‘9유로 티켓’ 행사가 시작된 1일 독일 쾰른에서 시민들이 열차를 타고 있다. 쾰른/로이터 연합뉴스
“올여름엔 저렴한 가격으로 독일 어디든지 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대돼요. 이런 기회는 놓칠 수 없죠.”
독일 수도 베를린에 거주하는 50살 마르틴(가명)은 여름휴가 때 베를린에서 하루 만에 다녀올 수 있는 도시를 여러곳 둘러볼 생각이다. 1일부터 9유로(약 1만2천원)짜리 ‘티켓 한장’으로 한달 동안 독일 전역의 지역 철도와 버스 등 대중교통을 탈 수 있는 행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다만, 고속철도와 고속버스 등은 탑승할 수 없다.
독일에서 이런 ‘파격적’인 행사가 시작된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인플레로 고통받는 서민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다. 독일 물가상승률은 지난달 7.9%로 1990년 독일 통일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고, 러시아와 갈등 탓에 에너지 가격은 무려 38.3%가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9유로 티켓’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다. 폴커 비싱 교통부 장관은 “이미 700만장이 팔렸다”고 말했고, 독일 언론에서는 휴가철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 명소들을 소개하고 있다. 행사 기간은 6월1일부터 8월31일까지 3개월 한정이며, 티켓 유효기간은 월초부터 월말까지다.
올라프 숄츠 총리가 이끄는 독일 정부는 ‘9유로 티켓’ 행사를 위해 25억유로(약 3조3402억원)를 철도회사 등에 보조금으로 투입한다. 지난 3월 말 독일 연립정부는 밤샘 협상으로 급하게 행사를 기획했다. 행사를 시작한 또 다른 이유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증가한 국민들의 자가용 이용을 줄이고 대중교통 이용 확대를 끌어내겠다는 것이다. 비싱 장관은 “대중교통에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는 기회이며,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고, 시대에 맞는 조처”라고 말했다.
그러나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특히 철도 노동자들은 이용객이 갑작스럽게 증가하면 감당하기 어렵다고 우려하고 있다. 클라우스 호멜 독일 철도 노조위원장은 지난달 “탑승객 초과로 결국 기차가 정지하고 역을 폐쇄하는 지경까지 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독일 부유층들의 휴양지로 알려진 북해 섬 ‘질트’에 있는 고급 호텔 관계자들은 서민 방문객이 몰려올 수 있다는 발언을 했다가 공분을 사는 일도 있었다.
정부 의도와 달리 만원 버스나 전철에 시달린 시민들이 석달 뒤 자동차 이용으로 되돌아갈 가능성도 있다. 9유로 티켓 행사가 끝난 뒤 대중교통 이용 요금이 일제히 오를 수도 있다. 독일의 대중교통 요금은 지금도 비교적 비싼 편이어서 자가용 이용자가 많다. 베를린 지하철 기본요금은 할인이 적용되지 않을 경우 3유로(약 4천원)이다. 독일 통계청에 따르면 경제활동 인구 중 68.4%가 승용차를 이용하고 대중교통 이용자는 13.4%에 그친다.
일간 <쥐트도이체 차이퉁>은 사설에서 “독일 대중교통은 9유로 티켓 행사를 준비 없이 맞는다. 혼란이 가중되고 대중의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뀔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반면, 헨리크 팔크 함부르크 전철 최고경영자(CEO)는 “여러 우려와 비판도 있지만 누구나 9유로 티켓에 관해 이야기한다. 대중교통 입장에선 매우 유리한 일”이라고 말했다고 일간 <디 벨트>가 전했다.
베를린/한주연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