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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유럽은 속국 아니다”…마크롱, ‘미국 견제’ 독자행보 왜?

등록 2023-05-21 09:00수정 2023-05-21 22:20

[한겨레S] 노지원의 이유 있는 유럽
마크롱과 ‘전략적 자율성’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달 7일 중국 광둥성 광저우의 소나무 정원인 ‘쑹위안’(송원)을 걸으며 대화하고 있다. EPA 신화 연합뉴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달 7일 중국 광둥성 광저우의 소나무 정원인 ‘쑹위안’(송원)을 걸으며 대화하고 있다. EPA 신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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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럽발 뉴스 헤드라인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입니다. 프랑스 전역을 뒤흔들어놓은 ‘연금개혁안’ 강행 때문만이 아닙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경쟁으로 전세계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폭탄’ 발언을 던지며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4월5~7일 마크롱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고 돌아온 것이 화제를 모았습니다. 2019년 10월 이후 3년 반 만의 방중이었습니다. 50명 넘는 대규모 경제사절단도 동행했습니다. 프랑스 항공기 제조사 에어버스는 중국 톈진에 제2생산라인을 설립하고 중국은 에어버스 항공기를 160대나 구매하기로 하는 등 프랑스와 중국 기업들은 18건의 크고 작은 협정을 맺으며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약속했습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지난 3월30일 “중국과 디커플은 가능하지 않으며 유럽에 이익도 되지 않는다”, “우리는 디리스크(위험완화)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 직후 마크롱 대통령은 베이징에 이어 광저우까지 돌아보며 중국으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의 방중 자체도 뉴스였지만 그가 중국 방문 뒤 내놓은 발언은 유럽 전체를 들썩이게 했습니다.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사활적 이익’으로 여기는 대만 문제에 대해 “우리와 무관”하다거나, “동맹이 된다는 것이 속국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며 ‘전략적 자율성’이라는 개념을 강조한 겁니다. 미국과 유럽 등 서방에서는 비판 목소리가 쏟아졌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이 △중국의 대만 무력통일 가능성을 경시하고 △미국과 유럽연합이 손잡은 대서양 동맹에 균열을 내고 있으며 △대서양 횡단 연결고리를 끊고 프랑스의 영향력을 강화하려 한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중국 정부만 “존경”하고 “지지”한다며 환영했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의 행보는 어떤 판단의 결과였을까요?

미국과 전략적 거리…트럼프 학습효과

마크롱 대통령이 강조하고 있는 ‘전략적 자율성’은 유럽연합이 먼저 제시한 개념입니다. 2013년 유럽연합 공동 안보 및 국방 정책(CSDP) 문서는 유럽이 “보다 통합적이고 지속가능하며 혁신적이고 경쟁력 있는 국방 기술 및 산업 기반”을 구축해 “전략적 자율성”과 “파트너와 함께 행동할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명시하면서 처음 이 용어를 썼습니다.

독일 싱크탱크 ‘메르카토르 중국연구소’(MERICS)의 중국-유럽연합 관계 전문가인 그제고시 스테츠(Grzegorz Stec) 연구원은 지난 12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이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 관련 논의를 끌어내기 위해 고도로 계산된 정치적 발언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미-중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는 가운데 미국 쪽 인사들이 대만 지도자와 긴밀하게 접촉하며 대만해협의 긴장이 높아지는 데 대한 “불만을 암시하려는 목적”이었다는 겁니다.

또 마크롱 대통령의 ‘전략적 자율성’은 “유럽 전역에서 진행되는 중요한 논의, 즉 장기적으로 유럽연합이 지정학적 무대에서 행동할 수 있는 능력과 경제적 경쟁력 측면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고 스테츠 연구원은 평가합니다. “미국과의 동맹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으며 그 틀 안에서 ‘우리(유럽연합)의 역량’을 구축하면 된다”는 논리라는 겁니다.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이 미국과의 관계 설정 등의 단순한 고민을 넘어선다는 얘기입니다. 김정 북한대학원대 교수(정치학)도 “마크롱 대통령이 유럽에서의 자율성 확보를 위한 도구적 의미에서 중국과 제휴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짚었습니다. 마크롱의 이런 행보의 배경으로 김 교수는 “유럽연합에서 유일하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군사적 자율성”을 꼽았습니다.

“유럽은 미국의 속국이 아니다”라는 마크롱 대통령의 강력한 대미 견제 발언은 ‘트럼프 학습효과’로 분석됩니다. 스테츠 연구원은 유럽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을 경험한 뒤 “미국이 유럽의 가장 믿을 만한, 강한 동맹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깨달음이 있었던 것 같다”고 해석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집권 기간 미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웠고, 유럽 동맹국을 향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헌장 5조(집단방위)를 폐기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습니다. 트럼프는 여전히 미국의 강력한 대선후보입니다. 유럽으로서는 ‘워싱턴이 갑자기 마음을 바꾸는 상황’도 대비해야 합니다.

나토 의존 아닌 ‘EU공동안보’ 대비

미국이 ‘중국의 도전’이라는 최우선 과제에 직면한 상황이므로 유럽 스스로 안보를 책임져야 한다는 조언도 나옵니다. 필리프 르코르 아시아소사이어티 정책연구소 중국분석센터 선임연구원은 <한겨레>에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는 주로 대서양 횡단 동맹을 위한 것이며 나토 회원국이 공격받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세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미래를 위해 유럽이 나토에 의존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브뤼셀 기반 싱크탱크 ‘지정학연구그룹’(GEG)도 최근 발간한 논문에서 “유럽은 전략적 자율성에 투자해,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수 있을 때 미국이 다른 지역으로 전력을 재배치해도 유럽이 너무 취약한 위치에 놓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그러면서 “(유럽연합의) 여러 회원국이 동일한 군사 장비를 조달하고 방위산업의 역량을 빠르게 끌어올리기 위해 유럽 차원에서 상당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미 2017년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유럽연합의 공동 개입군 △공동 국방 예산 △공동 행동교리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유럽은 당장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위기 상황에서 미국의 개입을 절실히 필요로 합니다. 마크롱의 최근 행보와 발언이 더 주목받고 공격받는 이유도 그래서입니다. 그러나 책임감 있는 정치 지도자라면 몇수를 내다보는 혜안이 필요합니다. 유럽이 미국이라는 우방을 곁에 두면서도 ‘전략적 자율성’까지 겸비한다며 ‘더 유능한 동맹’이 될 수 있을 겁니다. 국제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습니다.

베를린 특파원 zone@hani.co.kr

독일 베를린 특파원으로 현지에서 발로 뛰며 취재하고 있다. 유럽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한 뼘 더 깊이 전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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