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시장이 시 행정에서 성 중립 용어를 쓰지 않겠다고 공언해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달 베를린 시장에 취임한 카이 베그너(기독교민주당)는 독일 언론 <빌트 암 존타크>와 인터뷰에서 시 업무에서 성 중립 용어를 배제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영국 <가디언>이 2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베그너 시장은 “성 중립 용어를 쓰도록 되어 있지만, 나한테 중요한 건 행정 용어가 포괄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나는 내가 학교에서 배운 독일어, 그래서 모두가 이해하는 독일어로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논지를 뒷받침하기 위해 이민자들도 끌어들였다. 그는 “우린 독일에 새로 온 사람들이 독일어를 익히길 기대한다”며 “이들이 독일어를 더 어렵게 느끼도록 만드는 걸 행정 당국이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성 중립 용어가 이들의 독일어 학습에 어려움을 가중한다는 뜻이다.
독일어를 비롯한 유럽 언어는 한국어와 달리, 대부분 명사가 남성·여성·중성으로 구분되어 쓰인다. 예컨대 독일어에서 남자 시민은 ‘뷔르거’, 여성 시민은 ‘뷔르거린’으로 구별된다. 논란이 되는 건 남성과 여성이 섞여 있는 복수형의 경우다. 남성이 한 명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여성이라고 해도, 남성의 복수형 ‘‘뷔르거’가 쓰이게 된다.
이런 문법 관행에 대해 유럽 사회 곳곳에서는 “성 평등 시각에 어긋난다”고 문제 제기가 이어지면서, 성 중립 용어를 대안으로 만들어 쓰자는 움직임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독일어에서는 ‘시민들’의 성 중립 복수형 대안으로 남성 복수형 ‘뷔르거’와 여성 복수형 ‘뷔르거리넨’가 두루 반영되도록 중간에 별표(*)를 넣은 ‘뷔르거*리넨’이 널리 통용되고 있다.
이런 성 중립 용어에 대해선 보수층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전통을 파괴하는 것”이라는 반발도 끊이지 않았다. 베르거 시장의 이 발언은 이런 보수층의 사고를 대변하고 있는 기민당의 이념적 성향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 발언에 대해 성 중립 용어의 배제 논리가 구태의연하다”는 등의 비판이 거세게 일자, 시 업무에서 성 중립 용어의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건 아니라고 한발 물러섰다. 베그너 시장은 현지 신문 <타게스슈피겔>에 “모든 사람이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다만 나는 내가 학교에서 배운 대로 쓰고 싶다. 그래서 나는 공문서에 성 중립 용어로 서명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성 중립 용어를 지지하는 요하나 우징어는 “우리 생각은 언어의 영향을 받는다. 만약 남성 용어로만 불리면, 종종 현실과 위배되는 정신적 이미지를 만들어낼 것”이라며 “성 중립 용어는 성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의 가치를 인정하는 민주주의 원리와 행동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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