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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럽

[현장] 천만명이 샀다! 한달 6만8천원 이용권으로 독일을 누비다

등록 2023-06-17 10:00수정 2023-06-18 10:25

[한겨레S] 노지원의 이유 있는 유럽
독일 ‘대중교통 자유이용권’ 체험기
지난 11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오스트크로이츠역에서 시민들이 열차에 타고 있다.
지난 11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오스트크로이츠역에서 시민들이 열차에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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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만8천원짜리 대중교통 ‘자유이용권’ 하나로 한달 내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닐 수 있다면, 여러분은 어디에 가고 싶으신가요?

지난 5월1일부터 독일 전역에는 ‘도이칠란트 티켓’이라는 이름이 붙은 49유로짜리 대중교통권 판매가 시작됐습니다. 이 표만 있으면 한달 동안 독일 전역에서 트램·버스·지하철은 물론 각 도시를 잇는 지역 열차까지 탈 수 있는데요. 출시 직후 한달 동안 시민 1천만명이 이 티켓을 샀습니다.

도이칠란트 티켓은 지난해 여름(6∼8월) 도입돼 5200만장이나 팔린 ‘9유로(약 1만2천원) 티켓’의 결과물입니다. 독일 정부는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으로 에너지 가격이 급격히 오른 데 따른 시민들의 경제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또한 동시에 사람들이 승용차보다 대중교통을 더 많이 이용하도록 해 2045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며 9유로 티켓을 도입했고, 선풍적 인기를 끌었습니다. 시민들은 지난여름 이 티켓으로 당일치기 여행을 많이 다녔고, 주말 기차 좌석이 매진되기도 했습니다. 9유로 티켓을 운영한 결과 실제로 물가상승률이 감소하고 시민들의 대중교통 이용이 늘었으며, 이산화탄소·대기오염도 등 환경 상태도 개선됐다고 합니다. 지난 13일 독일 연방통계청 자료를 보면, 5월 물가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6.1%였지만 전달인 4월(7.2%)보다 크게 완화됐습니다. 이 수치는 2022년 3월 이래 최저치이기도 합니다. 9유로 티켓의 효능을 확인한 독일 정부는 재정 부담이 커서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지적도 받아들여 올해는 49유로 티켓을 내놓았습니다. 독일의 성과에 영향을 받아 우리나라에서도 한달 1만원으로 모든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게 하자는 ‘1만원 교통패스연대’(서울환경연합, 민주버스본부 등 9개 시민단체)가 꾸려졌습니다. 정의당도 지난 4월, 국민들의 교통비 부담을 절반으로 낮추자며 ‘대중교통 3만원 프리패스 법안’(대중교통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기차 타고 데모하러 가요”

저도 49유로 도이칠란트 티켓을 사고, 휴일이었던 지난 11일(현지시각) 베를린에서 남동쪽으로 100㎞ 정도 떨어진 소도시 슈프레발트로 당일치기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원래 운임은 왕복 약 30유로(약 4만1천원)가 드는 거리입니다.

“기차 타고 데모하러 가요.” 열차 안에서 만난 대학생 루이사(26)와 클라라(27)는 베를린에서 기차로 2시간 떨어진 브란덴부르크의 한 도시에서 열리는 독일 극우정당 반대 집회에 참여하러 간다고 했습니다. “도이칠란트 티켓이 없었다면 데모에 갈 결심을 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어요. 도이칠란트 티켓으로 정치적 활동도 더 활발하게 할 수 있게 됐네요.(웃음)” 루이사는 자신을 도이칠란트 티켓의 “빅 팬”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독일의 여론조사기관 시베이가 이달 초 발표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77%가 이 티켓에 만족한다고 답했습니다. 클라라는 “이 티켓을 사용해 생활비가 줄어드는 느낌이 든다”며 “(49유로보다) 더 저렴해지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베를린에서 지하철·버스·트램 1회 탑승권은 3.2유로(약 4400원)입니다. 매일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이의 경우 하루 6.4유로(약 8800원), 5일만 타더라도 32유로(약 4만4천원)가 듭니다. 한달 정기권 가격은 약 60유로(약 8만3천원)입니다만, 베를린 안에서만 사용할 수 있고 다른 곳으로 넘어갈 경우 추가 비용을 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49유로 티켓 하나로 한달 동안 무제한으로 전국을 누빌 수 있으니 이용자에게는 확실히 이득입니다.

독일 지하철역에 마련된 티켓 판매기.
독일 지하철역에 마련된 티켓 판매기.

“49유로 티켓, 중산층에만 선물”

루이사는 “모든 것은 정치적 의지와 우선순위의 문제”라며 “독일에서 아우토반(고속도로)을 이용하는 것도 무료다. 기차가 승용차보다 더 빠르고 편안하고 저렴해야 사람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이라며 “(표값이) 49유로보다 더 싸져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습니다. 기후운동가들도 49유로 티켓이 승용차를 타는 사람을 대중교통으로 이끌 정도의 유인이 못 된다며 9유로 티켓 재도입을 주장합니다. 49유로 티켓이 출퇴근하는 중산층에는 ‘선물’이지만 수백만 저소득층은 이마저도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연간 365유로짜리 티켓’ 주장까지 나오는 이유입니다.

열차에서 만난 베를린 시민 다니엘(37)은 도이칠란트 티켓의 가장 큰 매력이 “자유로움”이라고 했습니다. 정해진 시간이 지나면 시효가 만료되는 일반 티켓과 달리 시간이나 구간 등 제약 없이 자유롭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세금을 많이 내는데 그에 대한 보답을 받는 기분”이라고 했습니다. 주말마다 부모님 댁에 가기 위해 슈프레발트행 기차를 탄다는 조세핀(30)도 “아침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줄 때 예전엔 걸어갈지 아니면 버스를 탈지 고민했다”며 “이젠 이 티켓으로 언제든지 트램이나 지하철, 버스에 올라탈 수 있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도이칠란트 티켓으로는 고속열차인 이체에(ICE)는 탑승할 수 없습니다. 베를린에서 함부르크까지 이체에로 2시간이 채 안 걸리지만 운임은 50유로(약 6만9천원)입니다. 도이칠란트 티켓으로 탑승 가능한 일반 열차는 한두차례 환승 시간까지 4시간이 넘게 걸립니다. 도이칠란트 티켓으로 고속열차를 탈 수 없다는 지적을 인식한 듯, 독일철도(도이체반)는 최근 단거리 고속열차를 단 9.9유로(약 1만3천원)에 이용할 수 있는 여름 특가 표를 출시했습니다. 예를 들어, 함부르크-브레멘 구간에서 이체에를 타려면 20유로(약 2만7천원)가 드는데 이를 특별 할인한 겁니다. 6∼7월 한정적으로 판매하는 이 티켓은 쾰른-뒤셀도르프, 함부르크-브레멘, 드레스덴-라이프치히, 아우크스부르크-뮌헨 등 단거리 고속열차에 적용됩니다.

글·사진 베를린/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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