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가 지난달 2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브뤼셀/EAP 연합뉴스
러시아가 지난 3월 예고한 대로 벨라루스에 ‘전술핵’ 배치를 시작하자 이 나라와 국경을 맞댄 폴란드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핵공유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북핵 위협이 커진 뒤 한국에서 이따금 불거지는 ‘전술핵 재배치’와 똑같은 요구가 폴란드에서 터져 나온 것이기에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내려질지 비상한 관심이 쏠린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각) 유럽연합(EU) 정상회의가 열린 벨기에 브뤼셀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여러 방식으로 위협을 고조시키는 상황을 팔짱만 끼고 바라볼 순 없는 일”이라며 “러시아가 벨라루스에 전술핵을 배치하려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린 모든 나토 회원국들에게 핵공유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더 많이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폴란드 현지 언론인 <퍼스트 뉴스>도 이 소식을 전하며 안제이 두다 대통령이 지난해 9월 매체와 인터뷰에서 “폴란드가 나토 핵공유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미국과 대화를 해왔다”고 밝혔음을 소개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지 1년이 흐른 지난 3월25일 러시아 국영 텔레비전인 <로시아24>와 인터뷰에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의 요청으로 전술핵을 벨라루스에 전진 배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어, 지난달 16일 첫 핵탄두가 벨라루스에 이미 배치됐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루카셴코 대통령도 지난달 23일 이미 상당한 수의 핵탄두가 영내에 들어와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의 핵 위협이 커진 상황에서 폴란드가 ‘우리에게도 미국의 전술핵을 배치해 달라’는 요구를 쏟아낸 모양새다. 미국은 북핵 위협으로 한국에서 ‘자체 핵무장론’이 본격 고개를 들자 지난 4월 말 ‘워싱턴 선언’을 통해 한-미 간에 핵전략을 기획을 토의할 수 있는 ‘핵 협의 그룹’(NCG)을 만들기로 한 바 있다.
폴란드가 참여를 원하는 나토의 핵공유는 유럽 동맹국 영토에 △미국의 전술핵을 배치하고 △‘핵 기획 그룹’(NPG)을 만들어 핵 정책을 논의하며 △이들의 전투기를 핵의 ’투발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세 기둥으로 구성돼 있다. 이제 참여 중인 국가로는 유럽에서 직접 핵을 보유하지 않은 주요국인 독일·이탈리아·네덜란드·벨기에와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인 터키 등 5개국이다. 모바비에츠키 총리는 “결단은 물론 미국과 나토 파트너들이 하는 것이지만 신속한 행동이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미국은 일단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존 커비 미 백악관 전략소통조정관은 30일 브리핑에서 이와 관련해 “말할 게 없다”면서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위기에서 핵을 쓸 의도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다. 세르게이 랍코프 외교차관은 국영 1일 <타스> 통신과 인터뷰에서 벨라루스 전술핵 배치는 “핵확산금지조약(NPT) 등 국제적인 의무의 틀을 넘어서 이뤄지는 게 아니다”며 “러시아의 핵무기에 대한 통제권이 (벨라루스에) 이전되는 게 아니라는 점을 다시 강조해 둔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야말로 러시아를 공격할 수 있도록 자국 영토에서 수천㎞ 밖에 핵무기를 배치해 왔다”고 밝혔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부의장도 <타스>와 인터뷰에서 “폴란드에 핵을 배치해 달라는 요구가 불러올 수 있는 유일한 위험은 그 무기가 실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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