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17일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EPA 연합뉴스
로마 교황청 문서고에서 1940년대 초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당시 교황이 알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문서가 발견됐다. 당시 가톨릭 최고지도자가 잔혹한 집단학살에 침묵한 배경을 둘러싼 논란에 다시 불을 붙일 것으로 보인다.
바티칸 문서학자 지오바니 코코는 “반나치 저항운동에 참여했던 독일 예수회 신부 로타르 쾨니히가 폴란드의 벨제크 강제수용소의 처참한 상황에 대해 교황청에 보고한 편지를 바티칸 문서고에서 발견했다”며 내용을 공개했다고 뉴욕타임스가 17일 보도했다.
1942년 12월 14일자 직인이 찍힌 편지에는 “날마다 벨제크 수용소에서 6000명 넘게, 특히 폴란드 사람과 유대인이 죽어 나가고 있다”고 쓰여 있다. 코코는 “편지의 수신자가 당시 교황이었던 비오 12세의 오른팔인 개인 비서”라며 “교황이 편지를 봤거나 내용을 보고받았을 가능성이 99%”라고 말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교황이었던 비오 12세의 문서고가 공개된 2020년 이래 관련 문서를 천착해온 코코는 다음주 이런 내용이 포함된 연구 결과를 책으로 낼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전쟁 중인 교황”이란 책을 낸 데이비드 커처 브라운대 교수는 “교황이 1942년 여름 유대인의 대량 학살에 대해 보고받았다는 것이 이번 문서에서 상세히 드러난다”고 말했다.
비오 12세는 재위 당시 일어난 홀로코스트(유대인 집단학살) 등 나치의 만행에 대해 거의 침묵했다. 언급하더라도 모호하게 입에 올리는 데 그쳤다. 예컨대 그는 1942년 크리스마스 라디오 연설에서 “아무 잘못도 없이 단지 인종과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죽음이나 점진적 절멸의 낙인이 찍힌 수만 명의 사람들이 있다”고 두루뭉실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 일을 저지른 나치 독일을 명시적으로 비난하지 않는 등 구체적인 사실에 대해선 입을 닫았다.
비오 12세가 나치의 만행에 대해 눈 감은 배경을 둘러싸곤 학자들 사이에도 논란이 되고 있다. 어떤 이들은 그가 나치 독일을 명시적으로 비난하면 유대인뿐 아니라 가톨릭 교회에 더 나쁜 일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변호한다. 대신, 교황은 가톨릭 교회가 이탈리아와 다른 유럽 나라들에서 조용히 유대인을 숨겨주거나 도와주도록 했다는 것이다. 반면 다른 이들은 비오 12세가 나치 독일의 보복이나 종교의 정치중립 훼손을 두려워한 것으로 보이지만, 어떠한 이유를 달더라도 종교나 도덕적으로 정당화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비오 12세는 1958년 타계한 뒤 2009년 교황 베네딕토 16세에 의해 성인과 복자의 전 단계인 가경자로 선포됐다. 그러나 그의 시복 절차는 이스라엘에서 “그가 종교 지도자로 홀로코스트를 막기 위해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다”며 강력히 이의를 제기해 논란을 겪었다.
프란치스코 현 교황은 통상 교황 사후 70년 뒤 공개해온 관례를 깨고 8년 앞선 2020년 비오 12세의 문서를 공개했다.
박병수 선임기자
su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