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에 둘러싸여 있는 우크라이나 국기. 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가 자국산 농산물 수입을 금지하겠다고 나선 폴란드, 헝가리, 슬로바키아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기로 했다. 우크라이나 농산물 무역 문제로 유럽연합(EU) 연대에 균열이 생기는 모양새다.
율리아 스비리덴코 우크라이나 경제부 장관은 18일(현지시각) 성명을 내어 “개별 국가들이 우크라이나 상품 수입을 금지할 수 없음을 증명하는 것은 우리에게 상당히 중요하다”라며 “이것이 우리가 소를 제기하는 이유다”라고 밝혔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전했다. 스비리덴코 장관은 “우리는 이들 나라가 (우크라이나 농산물에 대한 수입) 제한 조치를 풀기를 바란다”라며 “이 문제를 오랫동안 법정에서 해결할 필요가 없기를 바란다”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무역업자들이 이러한 수입 제한 조치로 “어마어마한 손실을 입으며 계속 고통받고 있는” 상황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연대의 균열은 유럽연합이 동유럽 5개국에 지난 5월부터 약 5개월 간 허용했던 우크라이나산 곡물 일시적 수입제한 조처를 풀기로 결정한 뒤 현실화됐다. 유럽연합은 지난해 러시아의 전면침공으로 인해 흑해 항구를 통한 수출길이 막힌 우크라이나 곡물에 대해 무관세 혜택을 주기로 했는데,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가 자국 농산물 가격 폭락 등을 이유로 반발하자 밀·옥수수·유채·해바라기 씨 등 4개 품목에 대한 긴급수입제한 조처(세이프가드)를 일시 적용했다. 하지만 15일 자정 이 조치가 만료됐고,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시장 왜곡 현상이 사라졌다며 조치를 종료하기로 했다. 하지만
폴란드, 헝가리, 슬로바키아는 자체적으로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입을 계속 금지하겠다고 했다. 유럽연합이 이러한 일방적 조치가 유럽의 연대에 해가 된다며 우려하는 상황에서 당사자인 우크라이나가 세계무역기구 제소라는 구체적 행동으로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이들 3개국에 대해 자체적인 무역 제한 조처로 보복할 가능성까지 내비치고 있다.
셈 외즈데미어 독일 농림식품부 장관은 폴란드 등 3개국의 수입 제한 조처를 겨냥해 “시간제 연대”라면서 “자기 입맛에 맞을 때는 연대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하지 않는다”라고 쓴 소리를 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전했다. 마르크 페노 프랑스 농업부 장관은 유럽연합의 “단일, 공동 시장에 매우 깊은 의문을 제기한다”라고 비판했다.
유럽연합은 대응책을 검토 중이다. 버지니우스 신케비치우스 유럽연합 환경 담당 집행위원도 3개국의 조처가 유럽연합 무역 정책에 위배된다며 철회를 촉구했다. 다만 실제 우크라이나가 소송을 이어갈 경우 유럽연합은 비회원국인 우크라이나가 아니라 회원국인 이들 3개국을 방어해야 하는 곤란한 입장에 처할 수 있다.
폴란드는 강경한 입장이다. 피오트르 뮐러 폴란드 정부 대변인은 이날 폴란드 매체에 “우리는 계속 우리의 입장을 유지한다”라며 수입제한조치는 “경제적 분석과 유럽연합 및 국제법에 따른 권한에서 비롯된 것으로 옳다고 생각한다”라고 반박했다. 폴란드 집권 법과정의당은 우파 포퓰리즘 성향으로 분류되는데 다음달 중순 총선을 앞두고 농촌 유권자 표심 잡기에 몰두하고 있는 상황이다. 슬로바키아에서도 이달 말 총선이 열린다.
베를린/노지원 특파원
zo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