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로마 인근 라디스폴리에서 서커스단을 빠져 나와 거리를 배회한 사자의 모습. 엑스(X, 옛 트위터) 갈무리
이탈리아 로마 인근 도시에서 서커스단이 키우던 수사자가 우리를 빠져나와, 주민들이 5시간 넘게 공포에 떨었다.
로이터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11일 밤 해변도시 라디스폴리에서 서커스단이 키우던 사자가 우리를 빠져나와 거리를 배회했다. 이에 당국은 주민들에게 외출을 자제하도록 당부하는 한편 경찰과 수의사, 서커스 관계자들에게 사자를 추적하도록 했다. 결국 당국은 5시간여 만에 사자에 마취총을 쏴 붙잡았다.
주민이 찍어 온라인에 올린 것으로 보이는 영상을 보면, 목덜미에 갈기가 덥수룩한 다 자란 수사자가 어두운 주택가 거리에서 주차된 차량 사이로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다행히 이번 사건으로 다친 사람은 없었으며, 사자도 마취총에 얕게 잠들었다가 서커스단 우리로 옮겨진 뒤 금방 깨어났다. 사자를 진단한 수의사는 “별다른 후유증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커스단 관계자는 “사람들이 사자를 두려워하지만, 이 녀석은 별로 위험하지 않다”며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동안 사람을 공격하려고 한 적이 한 차례도 없었다”고 변호했다.
당국은 사자가 어떻게 서커스단 우리에서 탈출했는지 조사 중이다. 서커스단 관계자는 “사자가 탈출하기 한 시간 전쯤 우리를 살펴봤다”며 “당시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누군가 일부러 사자를 풀어줬을 수 있다는 현지 언론의 보도에 대해선 “현재 당국의 조사가 진행 중”이라며 말을 아꼈다.
논란이 된 수사자는 이름이 킴바로 8살 남짓 됐으며, 사람 손에서 나고 길러졌다. 서커스단에는 사자 말고도 호랑이를 포함한 고양이과 동물 아홉 마리가 있으며 또 코끼리와 말, 심지어 들소도 있다.
동물보호 활동가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서커스단에서 동물을 키우고 묘기를 시켜 구경거리로 만드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동물보호 단체는 “이번 사건이 안전상의 위험뿐 아니라 사람들의 오락을 위해 갇혀 사육되는 불쌍한 동물의 처지도 잘 보여줬다”고 말했다. 라디스폴리 시장 알렉산드로 그란도는 “이번 일이 사람들의 양심을 일깨워 동물 서커스를 금지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커스단 관계자는 사람들이 동물들이 서커스단에서 어떻게 보살핌을 받는지 현실도 모른 채 이야기한다”고 반박했다.
유럽에서는 20여개 나라가 동물의 서커스 묘기를 금지하거나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도 관련 법이 내년에 시행된다. 현재 이탈리아에서 서커스에 이용되는 동물은 2천 마리에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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