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왼쪽)이 13일(현지시각) 수도 바르샤바의 대통령궁에서 신임 도날트 투스크 총리에게 임명장을 주고 있다. 바르샤바/로이터 연합뉴스
폴란드 새 정부가 추진하는 공영 언론 개편을 막기 위해 전 정부 쪽에 가까운 대통령이 예산안에 대한 거부권 발동을 선언했다. 친유럽연합(EU) 성향의 새 정부와 반유럽연합 성향의 전임 정부 세력 간 갈등이 고조되면서, 폴란드의 정치·사회 개혁에 먹구름이 드리우는 양상이다.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이 도날트 투스크 새 총리가 마련한 내년 예산안을 거부하고 자신이 수정한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선언했다고 에이피(AP) 통신 등이 24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두다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에 쓴 글에서 예산안에 대한 거부권 발동을 다짐하면서 새 정부의 공영방송 개편 시도가 헌법과 법률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투스크 총리는 “부끄러운 줄 아시라”며 “(이 조처로) 영향을 받는 모든 이들에게 우리가 문제를 해결할 것임을 재확인한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출범한 새 정부는 공영 언론이 지난 8년 동안 ‘법과정의당’ 정부 아래서 정부의 선전도구로 전락했다며 개혁을 다짐했다. 새 정부는 첫번째 조처로 지난 20일 공영방송인 ‘폴란드 텔레비전’(TVP)과 ‘폴란드 라디오’(PR), 국영 통신사의 경영진과 이사진을 교체했다. 새로 임명된 경영진은 곧바로 ‘폴란드 텔레비전’의 24시간 뉴스 전문 채널의 방송을 중단시켰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전 총리와 법과정의당 의원들은 폴란드 텔레비전 본사에 들어가 농성을 벌이는 등 이에 강하게 반발했다.
투스크 정부는 앞서 19일 공영방송에 대한 정부 지원금이 빠진 내년도 예산안을 마련했다가 공영방송 지원금을 올해와 같은 수준인 30억 즈워티(약 9927억원)로 동결하는 내용을 추가했다. 새 정부의 예산안에는 교사와 공무원의 임금을 각각 30%, 20% 인상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폴란드의 대통령은 법안 등에 대한 거부권을 보유하며,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 등은 의회 재의 과정에서 60%의 찬성을 얻지 못하면 폐기된다. 새 연립정부는 전체 의석 460석의 54%인 248석을 확보하고 있어,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력화시키기 어려운 상황이다.
두다 대통령은 지난 2015년과 2020년 대선에서 법과정의당의 지지를 받은 덕분에 승리해, 법과정의당에 가까운 인사로 분류된다. 그는 지난 10월 15일 실시된 총선에서 법과정의당이 1당이 됐으나 다른 정당들의 연합 거부도 연립정부를 구성할 가능성이 없는데도 정부 구성 기회를 먼저 줌으로써 새 정부 출범을 지연시켰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두다 대통령의 임기는 1년 6개월 가량 남아 있다.
폴란드 싱크탱크 ‘공공재정 연구소’의 설립자 스와보미르 두데크는 “문제는 언론이 아니다”며 “투스크 정부는 대통령이 공공재정에 영향력을 끼치려는 전례 없는 사태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전임 폴란드 정부는 법원에 대한 정치권의 입김을 강화해 법치주의 논란을 불렀고, 유럽연합은 법원 독립성 보장을 요구하며 폴란드에 대한 경제 회복 기금과 유럽연합 결속 기금 등 1120억유로(약 160조원) 지원을 거부하고 있다. 투스크 정부는 이 기금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개혁을 서둘러야 하는 처지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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