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슬로에서 장미 추모제
총리·왕세자와 시민들, 테러 희생자에 연대 표시
범인에 대한 분노보다 ‘관용과 열린 마음’ 강조
“공포로 인해 현명한 사고가 마비돼선 안된다”
총리·왕세자와 시민들, 테러 희생자에 연대 표시
범인에 대한 분노보다 ‘관용과 열린 마음’ 강조
“공포로 인해 현명한 사고가 마비돼선 안된다”
“장미꽃을 들어주십시오. 다시는 이러한 테러가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민주주의를 지지해주십시오.”
옌스 스톨텐베르그 노르웨이 총리의 호소에 사랑과 희망을 상징하는 장미꽃을 든 사람들의 손이 일제히 하늘을 향했다. 새벽까지 부슬부슬 내리던 비도 잦아들었다. 최악의 참사를 맞아 25일(현지시각)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에서 열린 추모제엔 2차대전 이후 이 나라 추모행사 사상 최대 규모인 15만여명의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전국 곳곳에서도 같은 행사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76명 희생자에 연대감을 표하고, 사랑과 관용(톨레랑스)의 정신으로 아픔을 극복하겠다는 노르웨이인들의 다짐의 장이었다. 오슬로 시청 부근 제방에 올라선 호콘 왕세자는 “오늘 저녁 거리는 사랑으로 가득 찼다”고 말했고, 스톨텐베르그 총리는 “악이 사람 개인을 죽일 순 있어도, 노르웨이라는 공동체 전체를 죽일 순 없다”고 강조했다. 6살짜리 딸을 데리고 나온 로위 크바트닝엔(37)은 “우리는 열린 마음을 갖고 있고, 서로 존중하는 사회임을 보여주고자 여기 나왔다”고 말했다.
원래 ‘장미행진’으로 명명됐던 이 행사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안전을 위해 행진 대신 추모집회 형식으로 진행됐다. 행사가 끝날 무렵 한 가수는 노르웨이가 나치의 점령 아래 있을 때 불렸던 반나치 투쟁가 ‘젊은이를 위하여’를 불렀다. 집회 뒤 거리는 시민들이 내려놓은 장미꽃으로 가득 찼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사람들은 슬픔 속에 하나가 됐지만 범인을 향한 분노를 터뜨리는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고 이날 분위기를 전했다. 추모행사에 나온 베네디크테 라로드(26)는 “그(범인)는 우리의 관심이 아니다. 우리나라와 희생자와 그 가족들을 위해 나온 것이지, 그를 위해서 나온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개별적인 극우 테러와 이슬람 조직의 테러라는 차이가 있지만, 10년 전 9·11 테러 직후 미국을 뒤덮었던 공포와 애국심 강조 같은 반응은 노르웨이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사건 아흐레 뒤 의회에 나와 “이것은 미국만의 싸움이 아니라 세계의, 문명 전체의 싸움이다”라며 문명과의 싸움을 부추겼다. 하지만 이날 파비안 스탕 오슬로 시장은 “우리는 범행을 벌할 것이다. 그 벌은 더 큰 관대함과 더 큰 톨레랑스와 더 큰 민주주의다”라고 말했다. 일간 <아프톤블라데트>의 정치에디터 하랄 스탕헬레 역시 “공포로 인해 우리의 명확하고 현명한 사고가 마비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노르웨이인들의 관용의 정신이 시험대에 오르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미국의 <뉴욕 타임스>는 지난 2005년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를 테러리스트로 풍자한 만평 사건 이후 잠복했던 이민자 관련 논쟁이 이번 테러를 계기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노르웨이에서 이민자들의 비율은 11%에 불과하지만, 최근 15년 사이 그 수가 3배로 껑충 뛰었다. 실업률이 낮아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일자리를 둘러싼 갈등은 적지만, 오슬로의 동쪽에 몰려든 이민자들의 집단문화에 대해 자유와 평등을 강조하는 노르웨이인들이 느끼는 이질감은 크다.
우퇴위아섬에서 살아남은 27살 여성이 미국 <시엔엔>(CNN)에 한 말은 다문화주의와 관용의 정신이 곳곳에서 흔들려가는 지구촌을 향한 호소였다. “한 사람이 저토록 큰 증오를 보여줄 수 있다면, 우리가 함께했을 때 얼마나 더 큰 사랑을 보여줄 수 있을지 생각해보라.”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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