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핀란드 ‘강경’에 동구권 가세
프랑스·이탈리아는 적극 합의 촉구
19개국 재무장관 회의서 날선 공방
유럽연합 28개 전체 정상회의 취소
3차 구제금융 합의돼도 골 깊어질듯
프랑스·이탈리아는 적극 합의 촉구
19개국 재무장관 회의서 날선 공방
유럽연합 28개 전체 정상회의 취소
3차 구제금융 합의돼도 골 깊어질듯
그리스 위기로 유럽의 분열이 현실화하고 있다. 그리스 구제금융에 공공연히 반대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그동안 금기시되던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그렉시트)까지 제시됐다.
11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로존 19개국 재무장관 회의는 그리스가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제출한 재정개혁안에 대한 회의론만 커진 가운데 성과 없이 끝났다. 이에 따라 12일 오후 열릴 예정이던 유럽연합 전체 28개 회원국 정상회의도 전격 취소됐다. 12일 오전에는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가 다시 열렸고, 오후에는 유로화 사용 19개국 정상들만 모여 그리스 구제금융 사태를 논의했다.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에서는 채권단 쪽 입장의 열쇠를 쥔 독일이 강경한 목소리를 강화한 가운데 슬로바키아 등 동구권 국가들도 이에 가세했다. 또 핀란드는 그리스 구제금융이 합의돼도 국내에서 의회 비준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독일 쪽은 회의에 앞서 그리스를 유로존에서 일시 탈퇴시키는 계획안을 일부 회원국에 회람시키기도 했다.
11일 회의에서 알렉스 스터브 핀란드 재무장관은 그리스 구제금융에 대한 합의 권한을 위임받지 못한 채 참석했다. 핀란드 연립정부의 일원인 극우정당 ‘진정한 핀란드인’의 대표 티모 소이니는 핀란드가 그리스의 새로운 구제금융에 합의해주면 연정을 탈퇴해 붕괴시켜버리겠다고 압박했다. 이날 회의에서 핀란드는 구제금융 합의를 거부했다는 비공식적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핀란드의 반대 만으로 그리스 구제금융이 무산될 가능성은 낮지만, 이를 둘러싼 회원국 내부의 균열은 더 깊어질 것이 분명하다. 유럽연합의 의사 결정은 회원국 만장일치제이나, 이번 구제금융 안건은 유로존 85%가 찬성하면 된다. 지분 비율이 큰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회의 뒤 피터 카지미르 슬로바키아 재무장관은 그리스가 제출한 새로운 긴축안은 이미 그들이 과거에 팔아먹은 것이라며 그리스 구제금융에 대해 “거부가 더 좋은 답이다”고 말했다.
회의에 앞서, 독일 쪽에서 작성된 그리스의 일시적 유로존 탈퇴안도 나돌았다.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이 독일 재무부 문건을 인용해, 500억유로 상당의 그리스의 국유자산을 매각해 부채를 갚는 방안과 그리스를 적어도 5년간 유로존에서 탈퇴시키고 채무조정을 하는 방안을 보도했다. 독일 쪽은 이 방안이 실무 차원에서 검토된 것이고, 공식적 의견은 아니라고 부인했다.
개인적으로는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주장했던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이날 회의에서는 더욱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그리스의 재정개혁안이 “협상의 기초가 되기에 충분하다”는 국제채권단 ‘트로이카’ 전문가들의 의견을 일축하며 “신뢰는 지난 몇달 동안 믿을 수 없는 행태 속에서 파괴됐다”고 그리스에 대한 적나라한 불신을 드러냈다.
유럽연합의 한 외교관은 “매파들의 목소리가 매우 크다”며 독일 역시 입장이 강경하다고 전했다. 독일은 그리스가 약속한 재정개혁을 감시하는 외부 참관단의 포괄적 권한을 강화하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독일 등 북구권 국가의 강경한 입장에 슬로바키아 등 동구권 국가들의 가세한데다 핀란드의 비토로 그리스 구제금융 회의론이 커진 반면,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은 적극적인 합의를 촉구하고 있다. 또 국외자이나 강력한 입김을 가진 미국 및 채권단의 일원인 국제통화기금(IMF)도 프랑스 등의 입장에 동조하고 있다.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는 그리스에 대한 압박과 관련해 “충분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그리스가 ‘더 이상의 치욕을 감수해서는 안된다’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맞설 것이라고 <가디언>은 보도했다. 그리스 구제금융이 합의돼도, 구체적 실행방안 등을 놓고 유럽연합 회원국들 사이에서 내홍은 불가피해 보인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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