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브렉시트를 둘러싼 보수당 내의 격한 반발에도 9일 총리관저인 런던 다우닝가 10번지 앞에서 웃음짓고 있다. 런던/로이터 연합뉴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의 ‘부드러운 브렉시트’ 노선에 반발해 보수당 내 ‘강경파’의 핵심인 보리스 존슨 외교장관이 9일 사직서를 냈다. 전날 데이비드 데이비스 브렉시트 담당 장관의 사임에 이은 두번째 주요 각료의 이탈로 메이 정권이 거대한 사임 압력에 직면하게 됐다. 영국과 유럽연합(EU)이 브렉시트의 조건에 합의하지 못한 채로 2019년 3월 ‘무질서한 브렉시트’를 맞이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존슨 외교장관은 9일 메이 총리 앞으로 보낸 사임 서한에서 “영국 국민들은 2년 전 유럽연합에서 이탈하면, 민주주의를 되돌려 받을 수 있을 것이란 모호하지 않고 분명한 전망 아래서 국민투표를 했다. 그들은 우리가 독립적인 이민 정책을 집행할 수 있고, 현재 유럽연합이 사용하고 있는 영국의 돈을 되돌려 받을 것이며, 무엇보다 우리가 국민들의 이해에 입각해 독립적으로 법을 통과시킬 수 있다는 얘길 들었다. 그러나 (메이 총리의 ‘부드러운 브렉시트’ 노선으로 인해) 그 꿈은 죽어가고 있고, 쓸모 없는 자가 의심으로 인해 질식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앞서 메이 총리는 지난 6일 각료들을 총리 별장인 체커스에 모아놓고 브렉시트 이후 유럽연합과 상품·농산물에 관한 자유무역지대를 창설하고, 공업제품에 대한 유럽연합의 규격을 따르는 것을 뼈대로 하는 부드러운 브렉시트 노선을 제시했다. 그동안에는 메이 총리도 유럽연합에서 완전히 이탈한다는 ‘강경한 브렉시트’를 기본 방침으로 내세워왔지만 유럽연합과 무역 축소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우려해 현실론으로 기운 셈이다. 일부 각료들은 ‘원칙을 지켜야 한다’며 반발했지만, 12시간에 걸친 총리의 마라톤 설득에 동의한듯 보였다.
그러나 8일 밤 유럽연합과 브렉시트 협상을 담당해 오던 데이비스 장관이 돌연 사임한데 이어, 불과 15시간 만에 강경한 브렉시트를 주장해 온 핵심 인물인 존슨 외교장관도 사직서를 냈다. 존슨 장관은 서한에서 “만약 브렉시트가 의미 있는 것이 되려면 우리는 장관들과 의회에서 국민을 지키기 위해 다르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만약, 한 나라가 자기 나라 여성 자전거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존슨 장관은 런던 지사 시절 여성 자전거 이용자들이 대형 버스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빈발하자 버스 객실 창문을 낮춰 운전사의 시야를 확보하려 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유럽연합이 공통 기준을 만들어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주장에 따라 좌절을 겪은 바 있다)을 통과시킬 수 없다면, 그런 나라는 진정한 독립국이라 부를 수 없다”며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진정 식민지 상태를 상해 나아가고 있다”고 메이 총리를 맹 비난했다. 영국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유럽연합에서 완전히 이탈하는 강경한 브렉시트를 결단해야 한다는 주장인 셈이다.
그동안 존슨 장관 등 강경파들은 영국이 유럽연합과 관계를 확실히 끊고, 독립적인 입장에서 외국과 자유무역협정(FTA)를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메이 총리의 ‘부드러운 브렉시트’ 노선에 따르게 되면 영국이 유럽연합 이탈 뒤에도 유럽연합의 여러 규정을 따르게 돼 협상의 자율권이 위축되고 만다.
외신들은 여당인 보수당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두 장관의 사직으로 메이 총리가 사임 압력에 직면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아직까진 메이 총리의 사임을 요구하는 목소리보다는 부드러운 브렉시트 노선을 조속이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한 편이다. 보수당의 당헌에 따르면 소속 의원 15%이상이 동의할 경우 총리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진행할 수 있다. 메이 총리는 존슨 장관의 후임으로 제레미 헌트 보건장관을 임명했다.
현재와 같은 혼란 상황이 이어지면 2019년 3월 브렉시트를 앞둔 영국은 큰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영국은 10월까지 브렉시트 이후 영국과 유럽연합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지를 두고 기본합의를 이뤄야 한다. 지금처럼 브렉시트의 방식을 둘러싼 국내 혼란이 장기화될 경우 영국은 아무런 준비 없이 유럽연합에서 이탈하는 ‘무질서한 브렉시트’를 맞게 될 수도 있다.
길윤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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