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9월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이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 알카에다가 여객기들을 납치해 벌인 동시다발 테러 공격을 받아 무너지고 있다. 출처 flickr
프랑스의 한 출판사가 역사 교과서에 ‘9·11 테러’가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자작극일 가능성을 언급하는 서술을 했다가 논란이 커지자 공식 사과했다. 2001년 발생한 비극을 둘러싼 음모론이 2020년이 되도록 불씨가 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프랑스의 엘립스 출판사가 출간한 <플래시카드로 보는 20세기 역사>라는 책에, 이미 틀린 것으로 판명 난 음모론이 실린 사실을 학교 교사들이 발견해 소셜미디어에 올리면서 화제와 논란이 됐다고 영국 <비비시>(BBC) 방송이 최근 보도했다. 이 책은 프랑스의 사회과학 최고 명문 그랑제콜인 시앙스포를 졸업하고 역사·지리를 가르치는 장 피에르 로체 교수의 저서로, 시앙스포 학부생들과 그랑제콜 입시 준비생들을 겨냥해 저술된 역사 교과서라고 한다.
문제가 된 대목은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창설 배경과 9·11 동시다발 테러의 맥락을 설명하면서 나왔다. 해당 구절은 이렇다. “이 사건은 - 중동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행사를 위해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조율한 게 거의 확실한데- 미국 영토 안에서 미국의 힘을 상징하는 대상물들을 타격했다.”
이 책이 나온 것은 지난해 11월이지만, 문제가 불거진 건 최근 한 중등학교 교사의 딸이 이 책을 구매했다가 아버지에게 해당 구절을 말하면서다. 그 교사는 동료 교사들과 함께 참여하는 페이스북 그룹에 문제의 텍스트 사본을 올렸고, 소셜미디어 등을 타고 삽시간에 일파만파로 퍼져나갔다고 한다. 이 페이스북 그룹의 브루노 모디카 대변인은 일간 <르몽드>에 “순식간에 댓글이 122개나 달렸다”며 “지은이가 쓴 삽입 문장은 초등학생 등에게서 들을 수 있는 음모론으로, 교사가 출판물에 기술하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음모론 모니터링 사이트인 ‘콘스피러시 왓치’도 이 책의 논란이 된 구절을 확인하고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이 단체는 2018년 12월의 여론조사를 인용해 “35살 이하 젊은이의 21%가 9·11 테러의 배후에 미국 정부가 있다고 믿는다”며 이번 교과서는 바로 이들을 겨냥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출판사 쪽은 최근 누리집에 “어떠한 사실적 근거가 없는 음모론을 반영하는 이 구절은 이 책에 쓰이지 않았어야 했다. 이 구절은 출판사의 편집방향이나 저자의 의도를 반영하지 않는다”는 공식 해명문을 올리고 사태 수습에 나섰다. 출판사는 지은이도 이 삽입 구절을 삭제하기를 바란다며, 이 책의 온라인판과 아직 서점에 배포되지 않은 책들에는 수정 문구를 추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출판사 쪽은 <비비시>에 보낸 입장문에서 “우리 출판사가 내는 책에 (저자들이) 개인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지만, 어떤 경우에도 부정확하거나 근거 없는 사실이 객관적인 진리로 제시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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