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로베르토 스페란차 이탈리아 보건장관(가운데)이 인접 7개국 보건장관들과 코로나19 공동 대응회의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마/EPA 연합뉴스
이탈리아에서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하고 접경국들에서도 확진자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유럽연합(EU)이 국경을 폐쇄하는 방식의 대응은 하지 않기로 해 주목된다. 국경 폐쇄 방화벽의 실효성 의문, 지나친 공포감을 부추길 우려, 유럽연합 시민의 역내 자유이동을 보장한 유럽공동체의 특수성 등을 두루 고려한 결정으로 보인다.
유럽에서 이탈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거나 왕래가 많은 프랑스·스위스·오스트리아·독일 등 7개국 보건장관들이 25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방역 대책회의를 하고 ‘공동 원칙’에 서명했다고 <에이피>(AP) 통신 등 외신들이 전했다. ‘공동 원칙’은 코로나19 관련 정보를 매일 공유하고 국경 폐쇄는 권고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뼈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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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올리비에 베랑 보건장관은 자국의 뉴스 전문채널 <베에프엠> 인터뷰에서, “회의 참가국 보건장관들은 (코로나19 확산 예방을 위해) 국경 문을 닫는 것이 현명하지 않고, (사태에) 비례하지 않으며, 효율적이지도 않을 것이라는 데 동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대형 문화행사와 스포츠 경기를 모두 취소할 필요까진 없으며 사안별 평가(케이스 바이 케이스)에 근거해 판단하자는 데에도 참가국 장관들의 의견이 일치했다고 덧붙였다.
로베르토 스페란차 이탈리아 보건장관은 “우리는 지금 국경을 존중하지 않는 한 바이러스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무차별적인 국경 폐쇄보다 과학적이고 합리적 대응이 바이러스 확산 예방에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을 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아직까진 코로나19 청정국가인 벨기에의 마기 드 블록 보건장관도 자국 방송에 “바이러스가 우리나라에 도달할 위험은 실재한다”면서도 “바이러스가 국경 앞에서 멈추진 않는다”며 국경 폐쇄에는 회의적 시각을 보였다. <에이피> 통신은 “유럽의 보건당국들이 신중한 공중보건 대책과 패닉 확산 방지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날 회의는 앞서 24일 이탈리아 정부가 북쪽 국경을 맞댄 이웃 국가들에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공동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자고 제안한 데 따른 것이라고 현지 <안사>(ANSA) 통신이 전했다. 이탈리아의 주세페 콘테 총리는 이날 지방정부들까지 화상 연결한 비상회의에서, 코로나19의 진앙이 된 북부 ‘적색구역’의 봉쇄와 각급 학교 및 상점 폐쇄, 모든 주민의 자가격리 등 초강경 대책을 내놨다.
이날 회의에선 유럽연합 회원국 시민의 역내 자유이동을 허용하는 ‘솅겐 조약’의 한시 유보와 국경 통제도 검토했으나 시행하지 않기로 하고, 대신 접경국들과의 공동 대응책을 마련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탈리아 국내의 적색구역 봉쇄는 코로나19 확산이 심각한 특정지역의 인적 이동을 임시 차단한 것으로, 유럽 국가들이 모든 이탈리아 시민의 입국을 금지하는 국경 폐쇄와는 다른 조처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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