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현지시각)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두마(연방의회 하원)에서 연설하고 있다. 그는 대통령 연임 제한을 철폐하는 개헌안에 대한 조건부 지지를 표명했다. 모스크바/AP 연합뉴스
종신집권인가, 2연임 추가인가?
러시아의 현대판 ‘차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자신의 권력 연장안을 정식으로 제안했다.
푸틴 대통령은 10일 의회 국정연설에서 하원인 두마에서 통과된 헌법 개정안과 관련해 자신의 현재 임기가 끝나는 2024년 이후에도 대선 출마를 배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발의된 헌법 개정안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합헌으로 결정돼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지만, 헌법재판소는 그동안 푸틴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하는 판결들을 내려왔다.
푸틴 대통령의 국정연설에 앞서 두마는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인 발렌티나 테레슈코바가 발의한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핵심은 대통령 연임 제한을 헌법 개정과 동시에 새로 적용하는 것이다. 즉, 2기로 제한된 대통령 연임 규정은 그대로 두되, 처음부터 다시 적용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0으로 리셋’하는 방식이다.
오는 2024년이면 연임을 채우는 푸틴도 이렇게 헌법이 개정되면 두 차례 더 대선에 출마할 수 있다. 임기가 6년이므로 이론적으로는 2036년까지 집권할 수 있는 것이다. 올해 67살인 푸틴이 83살까지 집권할 수 있다. 푸틴에게 36년간의 장기집권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푸틴은 2000년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4년 임기를 두차례 지낸 뒤 연임 규정에 걸리자,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총리로 물러난 뒤 2013년에 다시 대통령에 출마해, 두번째 임기를 지내고 있다. 총리 시절에도 사실상 실권자여서 20년간 권좌를 지키고 있다.
푸틴은 헌법에서 대통령 임기 제한 규정을 철폐하는 것은 “처방책”이 아니라고 거부했다. 푸틴이 헌법의 3연임 금지조항을 폐지하는 대신에 ‘0으로의 리셋’ 방책을 택한 것은 종신집권에 대한 우려와 반발을 약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또, 80대 중반 이후 고령 이후의 계속적 집권도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 같다.
‘0으로 리셋’ 방식이라는 권력 연장책이 나오기 전에 푸틴 쪽에서는 의원내각제 형식의 개헌설 등이 흘러나왔다. 실권을 쥔 총리로 푸틴이 권좌를 유지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 경우 의회의 권력이 커져, ‘푸틴 총리’의 권력을 제한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푸틴은 이날 “강력한 대통령제가 절대적으로 필수적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부 유럽 국가들은 몇년 동안이나 정부를 구성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격동의 시대”에 안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푸틴은 두마가 “더 폭넓은 권한을 가져야만 한다”고 말해 의회 달래기도 나섰다. 그는 러시아는 “권력자가 정기적으로 바뀌는 보장이 필요하다”며 “선거는 개방적이고 경쟁적이어야만 한다”고도 말했다. 이번 헌법 개정이 자신의 종신집권으로 가는 길이 아님을 애써 강조한 것이다.
이날 하원인 두마에서 통과된 개헌안은 상원의 승인 절차를 거쳐 헌재의 결정이 나면, 오는 4월22일 국민투표에 부쳐진다. 헌법개정안은 의회와 헌재, 국민투표에서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푸틴의 집권 통합러시아당은 두마에서 압도적 다수이고, 푸틴이 법원 등도 장악하고 있다. 또, 그의 지지율도 70%를 상회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권력연장을 위한 헌법 개정에 거의 장애가 없으나, 2024년 이후까지 푸틴이 고공 지지율과 권력 장악력을 유지할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현대 러시아에서 최장기 집권은 이오시프 스탈린 전 소련공산당 서기장의 30년간이다. 스탈린은 1921년에 집권해 1951년 사망 때까지 권력을 유지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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