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현지시각) 독일 북부 플렌스부르크 인근에서 덴마크로 넘어가는 국경 검문소가 폐쇄돼 차량들이 돌아가고 있다. 덴마크에 이어 독일도 16일 오전부터 접경 5개국의 국경을 부분 통제한다고 밝혔다. 플렌스부르크/EPA 연합뉴스
코로나19가 유럽 전역에서 무서운 기세로 번지면서, 결국 독일도 국경을 부분 통제하기로 했다. 주변국들의 잇따른 국경 폐쇄에도 “적절한 대응이 아니다”며 손사래를 치던 기존 방침을 바꾼 것이다.
독일의 태도 변화는 일요일이던 15일(현지시각)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등에서 하루 최대 규모의 확진자 및 사망자가 나오는 등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양상으로 치닫는 가운데 나왔다. 앞서 13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유럽이 코로나19 바이러스 팬데믹의 새로운 중심지가 되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독일의 호르스트 제호퍼 내무장관은 15일 언론 브리핑에서 ”프랑스·오스트리아·스위스·룩셈부르크·덴마크 등 5개국과의 국경에서 당분간 국경 통제를 실시하기로 했으며, 16일 오전 7시부터 발효된다”고 밝혔다. 다만, 일상적인 통근과 물류 이동은 허용된다. 제호퍼 장관은 “바이러스가 빠르고 공격적으로 확산하고 있다”며 “사태의 최고 정점은 아직도 오지 않았다고 가정해야 한다.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고 덧붙였다. 야당인 사민당의 베르벨 바스 의원(원내 부대표)는 현지 일간 <디벨트>에 “신규 감염 발생이 줄지 않으면 전면적인 국경 폐쇄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독일과 접경한 덴마크, 폴란드, 체코는 먼저 독일 쪽 국경을 폐쇄한 바 있다.
독일이 국경 부분 폐쇄를 발표한 이날, 유럽 주요국들은 코로나19 발생 이후 최악의 날을 맞았다. 이탈리아는 하루 사이에만 무려 368명이 코로나19로 숨지면서 일일 사망자 최다를 기록했다. 전체 사망자는 1809명, 누적 확진자는 2만4747명에 이른다. 스페인도 이날 97명(전체 288명), 프랑스는 29명(전체 120명)이 숨지면서 하루 사망자 최고 기록을 바꿨다.
독일은 전체 사망자가 9명으로 매우 적은 편이지만, 이날 하루에만 확진 판정이 1000건 넘게 나오면서 누적 확진자가 5000명에 육박했다. 독일 전역의 학교와 보육시설도 올해 기독교 부활절 이후인 4월 말까지 문을 닫는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스위스도 이날 신규 확진자가 800명 가까이 나오면서 누적 확진자가 2200여명으로 폭증했다. 단 하루 새 전체 확진자의 거의 절반이 쏟아져 나온 셈이다.
16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인 요르단강 서안 베들레헴의 예수탄생교회 앞에서 팔레스타인 보안대원들이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이탈리아에 대한 연대의 뜻으로 이탈리아 국기를 들고 촛불을 밝히고 있다. 베들레헴/신화 연합뉴스
유럽에서 코로나19 감염 사망자가 급증하는 것은 인구 고령화가 한 이유로 꼽힌다. 면역력이 약해진 고령자들이 신종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한 데다, 기저질환까지 있을 경우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탈리아 질병통제센터가 집계한 사망자의 연령 분포를 보면, 80대 이상이 59%, 70대(70~79살)가 32%를 차지했다. 전체 사망자 10명 중 9명이 70살 이상 고령자인 셈이다.
영국 정부는 코로나19 피해를 줄이기 위해 고령자들을 자가격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매트 핸콕 영국 보건부 장관은 15일 <스카이 뉴스> 인터뷰에서 “향후 몇 주 안에 70살 이상 고령자들은 최대 4개월간 집에 머물러 달라는 요청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경찰에게 자가격리를 하지 않는 감염자를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도 강력한 코로나19 대응책에 포함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유럽과 중동 지역의 코로나19 확진 및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16일 중국 바깥 나라들의 누적 확진자 수가 처음으로 바이러스 발원지인 중국을 넘어섰다. 이날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이 각국 발표를 취합한 전 세계 코로나19 현황을 보면, 이날 저녁 9시(한국시각) 현재 전 세계 누적 확진자는 16만9387명으로, 중국 본토(8만1020명)보다 중국 이외 지역(8만8367명)이 더 많다. 이탈리아와 이란이 가장 심각하며, 한국, 스페인, 독일, 프랑스, 미국, 스위스 등이 뒤를 이었다. 사망자도 중국 본토(3217명) 이외의 지역(3296명)에서 더 많이 발생했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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