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페이지 ㅣ 영국 버밍엄대 사회정책학과 교수
세계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영국인들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드라마틱한 경제·사회적 변화에 대해 얘기한다. 보수당 정부는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다양한 조처를 했다. 시민들은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사회 활동을 하지 못한 채 집에 머물러야 한다. 정부는 코로나19 위기를 맞아 시민들의 행동을 제한할 수 있게 됐지만, 이에 대한 시민들의 동의와 연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도 인식하고 있다.
최근의 광범위한 제한 조처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음식과 연료까지 배급했던 윈스턴 처칠의 전시 내각 때와 비교된다. 당시 상황을 돌아보는 것은 현재 영국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정치역사학자들은 2차 세계대전이 시민들의 태도와 행동에 미친 영향을 오랫동안 연구하고 논쟁했다. 긍정적인 면을 보면, 수많은 시민이 적의 공격을 피해 피난 온 이들에게 숙소를 제공하는 등 이타적인 행동을 했다. 또 어떤 시민들은 민방위 조직에 가입하거나 화재 감시와 같은 임무를 자발적으로 수행했다. 부정적인 면도 적지 않다. 파괴된 집에서 물품을 훔치는 등 기회주의적인 범죄가 많이 벌어졌고, 법적으로 금지됐는데도 산업 분쟁과 파업이 크게 늘었다. 돈 많고 잘 교육받은 중상류층이 노동자 계층보다 규제를 회피하고 더 적게 희생했다는 증거도 많다.
이런 부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역사학자 리처드 티트머스가 그의 저서 <사회 정책의 문제들>에서 언급했듯, 당시 시민들과 정부는 사회 통합에 대한 열정이 넘쳤고, 이는 더욱 평등하고 평화적인 사회를 바라는 요구로 이어졌다. 과거 경험을 일반화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2차대전 이후 영국의 중대한 사회적 변화를 살펴보면 현재 코로나19 위기에서 이타적 대응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영국 사회는 ‘사회보장에 대한 베버리지 보고서’(1942년)와 이후 등장한 급진적인 노동당 정부(1945~1951년)에 의해 복지국가로 나아갔지만, 1940년대 대중적 지지를 얻었던 사회적 연대주의는 지속적으로 퇴색해왔다. 특히 1979~1990년 집권한 대처 정부는 신자유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집단주의와 협력보다 개인주의와 경쟁에 더 큰 비중을 두는 사회로 영국을 이끌었다. 그의 지지자들은 이런 변화가 더 역동적인 경제 환경을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많은 사람이 영국 북부를 중심으로 한 주요 산업이 타격을 입고 사회적 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블레어(1997~2007년)와 브라운(2007~2010년) 등 노동당 정부는 대처와 메이저(1990~1997년)의 보수당 정부보다 사회정의에 중점을 두었지만, 그들 역시 대처의 접근법이 사회복지를 위한 재정 확충에 더 유리하다고 보고 기존 자유주의 경제 질서에 도전하는 것을 꺼렸다. 실제 최근에는 사회복지에 필요한 재원이 창출될 경우, 가벼운 경제 규제나 분배 정의를 실현하지 못하는 조세제도도 허용될 수 있다는 정치적 합의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캐머런(2010~2016년)과 메이(2016~2019년), 존슨(2019년~) 등 최근 보수당 지도자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제적 긴축이 저소득층에 더 큰 부담을 주는 것으로 드러나자, 이 계층에게 더 큰 경제적 이익을 줄 수 있는 조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실제 존슨은 지난해 총선에서 노동 계층의 우려를 우선시하겠다고 직설적으로 얘기했다.
이런 상황에서 ‘소외된 계층’이 현재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의 이익을 위해 더 많은 희생을 감수할지 두고 볼 일이다. 사회적 연대는 개인간, 세대간, 그리고 계층간 깊고 오랜 신뢰가 필요하다. 코로나19의 도전에 대한 대응은 국가마다 다를 것이다. 영국의 경우 장기적 생존에 대한 최근의 위협을 극복할 수 있는 잠재적이고 충분한 사회연대의 감정과 행동이 여전히 존재하는지 지켜보는 것이 흥미로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