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이 7일 저녁 미국 <시비에스>(CBS)에서 방송된 인터뷰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영국 왕실이 해리 왕자 부부가 제기한 왕실의 인종 차별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버킹엄궁은 9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대리한 성명을 내고 해리 왕자 부부가 오프라 윈프리와의 인터뷰에서 제기한 인종 문제는 “우려스럽고”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해리 왕자의 부인 메간 마클은 지난 7일 미국 <시비에스>(CBS)를 통해 방송된 인터뷰에서 “(첫째 아이 아치를) 임신했을 때, 아이가 태어나면 피부색이 얼마나 어두울지 우려와 대화들이 오갔다”며 영국 왕실 내의 인종차별 문제를 점화했다. 마클은 외가 쪽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다. 부부는 왕실 중 누가 이런 발언을 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영국 왕실은 마클의 주장으로 논란이 거세지자 고위 왕족들이 긴급 위기 대책 회의를 열고 인터뷰 방송 이틀 만에 이런 성명을 냈다. 성명은 “전 가족은 최근 며칠 동안 해리와 마클이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완전히 파악하고는 슬픔을 느낀다”며 “제기된 문제, 특히 인종 문제는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버킹엄궁은 “어떤 기억들은 다를 수 있지만,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가족들에 의해 사적으로 처리될 것이다”고 덧붙였다.
<비비시>(BBC)는 왕실이 이 문제를 왕실 가족 문제로 생각하고, 가족들에게 이 문제를 사적으로 논의할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마클의 회견 뒤 여왕이 이 문제에 관한 성명을 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다. 이에 대한 여왕의 어떠한 언급도 ‘왕실 위기’라는 담론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왕실은 논란이 거세지자, 이런 타협적인 성명을 냈다고 <비비시>는 해석했다. 왕실 구성원들이 해리 왕자 부부를 둘러싼 불화를 가족 차원에서 중재하겠다는 의미라고 방송은 전했다.
마클의 인터뷰에 앞서 버킹엄 궁은 마클이 왕실의 직원을 괴롭혀 2명의 직원이 그만뒀다는 주장에 대해 조사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었다. 이 성명은 왕실 문제를 폭로할 것으로 우려됐던 마클의 신뢰성에 흠집을 내려는 의도로 해석되는 등 영국 왕실 내부의 불화를 드러냈다.
마클의 회견을 놓고 영국에서는 의견이 갈리며 논란이 커지고 있다. ’유고브’의 여론 조사결과, 해리 왕자 부부에 공감한다는 의견은 22%, 여왕과 왕실에 공감한다는 의견은 36%였다. 연령이 많고, 보수당 성향일수록 왕실에 우호적이고, 연령이 적고 노동당 성향일수록 해리 왕자 부부에 우호적이었다.
갈라진 민심을 반영하듯, 영국의 유명 방송 앵커가 이 문제에 대한 발언으로 하차했다. 영국 <아이티브이>(ITV)는 소속 앵커 피어스 모리슨이 자신이 진행하던 ‘굿모닝 브리튼’에서 그만둔다고 발표했다. 모리슨은 지난 8일 방송에서 “미안하지만 마클의 말을 한마디도 신뢰하지 않는다”며 “마클이 일기예보를 읽어준다고 하더라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건은 트위터에서 마클을 ‘피노키오 왕손빈’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의 발언에 대한 진정이 빗발치자, 당국은 발언의 가학성 여부를 가리는 조사에 착수했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