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탱크 광장
세계경제가 2007~2008년의 금융위기 여파에서 여전히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연초부터 중국 증시의 폭락으로 위기감이 팽배한 가운데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10월 내놓은 올해 세계경제성장률 전망치(3.6%)를 지난 1월 3.4%로 낮췄다. 불과 석달 만에 다시 하향조정한 셈이다.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조정한 가장 큰 원인은 미국이었다. 최근 고용지표가 개선되는 등 미국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고 판단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지난해 12월, 오랫동안 미뤄둔 기준금리 인상을 마침내 단행했다. 그러나 상황은 여전히 우울하다. 산업생산이 11월에 이어 12월에도 감소세를 이어간데다 12월 설비가동률은 2013년 7월 이후 최저치인 76.5%에 그쳤다는 발표까지 나왔다.
선진경제권의 성장을 그나마 이끌고 있는 미국이 이 정도다. 유럽은 기준금리를 2014년 9월 이후 연 0.05%로 묶은 채 양적완화(QE)를 통한 유동성 공급을 계속하고 있는데도 성장 모멘텀을 좀체 찾지 못하고 있고, 일본은 지난달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기준금리’라는 고육지책을 내놓았지만 그 효과는 미지수다. 선진경제권이 맥을 못 추니 거기에 제품을 공급하는 신흥국들, 나아가 이들 나라에 원자재를 공급하는 경제권에도 잔뜩 먹구름이 끼었다. 요컨대 2007~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이어진 유럽 재정위기에서부터 지금까지 세계경제를 침체시키는 원인은 선진국들이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대체 선진경제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가경제위원회 의장을 지낸 로런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미국 등 선진경제권 전체가 ‘장기정체’(secular stagnation)에 빠졌다고 진단한다. 실제로 2007년부터 현재에 이르는 경기순환(<그림> 참조)에서는 경기회복에 필요한 민간투자의 회복이 기존의 순환들에 비해 매우 더디다. 서머스의 분석으로는, 미국의 저성장은 2000년대 초 이른바 ‘닷컴 버블’이 붕괴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다만 2007년 이전까지는 금융규제 완화, 주택시장 버블, 방만한 재정운영 등으로 반짝 성장을 달성한 덕분에 문제가 감춰져 있었을 뿐이다. 그가 2013년 11월 국제통화기금의 연례 연구콘퍼런스에서 장기정체론을 화두로 던진 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국제통화기금 수석 이코노미스트였던 올리비에 블랑샤르 등 ‘원군’이 모여들고 있다.
IMF, 세계경제성장률 3.4% 하향 조정
미·유럽·일 등 선진국의 경제침체 탓
원자재 공급 신흥국들 경제도 된서리 선진경제 장기 경제정체 원인 두고
수요측-공급측 입장은 서로 달라도
“2007~08년 위기여파 장기화” 일치 누리과정 등 정부 복지지출 증대와
불평등 완화정책도 함께 추진해야
정부가 금융에 새 역할 부여도 필요 본래 장기정체는 미국 학계에서 가장 먼저 케인스주의로 ‘개종’한 학자군에 속하는 앨빈 한센이 1930년대 대불황 시기의 미국 경제를 설명하기 위해 채용한 개념이었다. 그에 따르면, 1929년 주식시장 붕괴 이후 불황이 장기화된 것은 인구증가 둔화와 기술 정체 등에 따른 총수요(소비+투자) 부족 때문이었다. 이 견해는 이후 제2차 세계대전과 그 뒤 경제가 호황을 맞으면서 자연스럽게 기각되었지만,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다시 소환되곤 했다. 이렇듯 장기정체론은 정체의 원인을 수요 측에서 찾는다는 특징이 있다. 특히 한센이 강조한 인구 요인과 기술 요인 외에 오늘날 선진경제권에서 장기정체를 낳는 수요 측 요인으로 소득 불평등 심화를 꼽을 수 있다. 문제의 원인을 수요 측에서 찾는다면 처방도 유효수요 진작이라는 전통적인 케인스주의 방식을 따를 수밖에 없다. 특히 기업의 투자가 수년째 지속적으로 부진한 가운데 실업이 증가하고 경제성장률이 떨어져 잠재성장률과 멀어지는 상황에서 정책당국은 이자율을 최대한 낮춰 기업의 투자를 독려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2007~2008년 위기 이후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완화적 통화정책을 폈던 건 대체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다만, 과연 그것이 충분했느냐는 질문은 남는다. 명목이자율이 0%에 가까운데도 여전히 저축보다 투자가 적다면, 최근 일본은행이 단행했듯이 금리를 마이너스로 내리든지, 반대로 제로금리를 유지하면서 중앙은행의 목표 물가상승률을 높여 결과적으로 실질이자율을 낮춰야 할 것이나 이것은 사실상 중앙은행의 통상적인 기능 바깥에 있다. 따라서 이런 통화정책이 여의치 않을 경우엔 정부가 적극적인 재정지출로 유효수요를 창출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2010년 이후 선진국 정부들은 긴축적 재정정책으로 일관했다. 이것은 장기정체론자들이 보기엔 총수요를 되레 축소시키는 ‘악수’였던 셈이다. 장기정체론과는 반대로, 현재 선진경제권에서 나타나는 경제침체의 원인을 수요보다는 공급 쪽에서 찾는 주장도 있다. 이를테면 2014년 초 미국 연준 의장직에서 내려온 벤 버냉키는 지금 미국이 겪고 있는 잠재성장률 둔화는 금융위기의 여파로 생산·공급 측면에서의 기술혁신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각종 투자가 주춤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일정한 ‘진통’을 동반하면서 일시적인 ‘역풍’이 걷히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얘기도 덧붙인다. 경제사가인 조엘 모키어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장기정체론이 기술진보의 역할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현대의 신기술이 낳는 생산성 및 경제후생 증대 효과는 기존 방식으로는 제대로 측정되지 않기 때문에 단순히 수치로 나타나는 것보다 실제로는 더 높은 성장이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또다른 경제사가인 니컬러스 크래프츠 영국 워릭대 교수는 선진경제권 내의 지역 간 격차를 강조한다. 인구구조나 노동생산성 변동추이 등을 볼 때 미국보다는 유럽이 장기정체에 더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한편, 로버트 고든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앞으로 미국 경제성장이 25~40년간 매우 느리게 진행될 것이라면서도 그 원인을 장기정체론과는 달리 네 가지 ‘역풍’에 따른 잠재성장률 저하에서 찾고 있다. 여기서 네 가지 역풍이란 인구 노령화, 소수 인종의 높은 교육탈락률과 비싼 대학등록금에 따른 교육 수준의 저하, 소득 불평등 심화, 정부 부채 누증을 가리킨다. 그에 따르면, 서머스가 말하는 장기정체는 실제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에 못 미치는 문제를 가리킨다. 반면에 자신이 보기엔 잠재성장률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에 양자 간 격차는 의미가 없다고 각을 세운다. 하지만 금융위기의 여파가 장기화하고 있다는 데 대해서는 대부분 논자들의 생각이 같다. 다만 그 원인을 수요 측에서 찾을 것이냐 공급 측에서 찾을 것이냐를 두고 입장이 양분될 뿐이다. 그렇다고 장기정체론자들이 공급 요인을 완전히 도외시하는 건 아니다. 투자 부족과 장기간에 걸친 실업이 자본 형성과 숙련 축적을 방해하면 경제의 생산잠재력 자체가 떨어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이 장기화하면 유효수요 증대와 함께 공급 측면의 생산성 제고 노력도 동시에 기울여야 한다. 이처럼 ‘상호수렴’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폴 크루그먼은 모키어 같은 정반대 쪽에 있는 논자뿐 아니라 고든 같은 중간지대에 있는 쪽과도 차이를 분명히 하면서 장기정체론은 철저하게 수요 측의 문제라고 못박는다. 문제의 원인을 어디에서 찾느냐에 따라 정책적 함의가 달라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고든, 모키어, 버냉키 같은 공급 측 논자들이 주장하듯 저성장의 원인이 생산성 저하에 있다면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만이 저성장을 이겨내는 길이 될 것이다. 만약 생산성을 높이지 못한다면 현재와 같은 저성장체제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경제 구조 개혁에 몰두해야 한다는 주장이 곧바로 제기된다. 이와 반대로 현재 위기의 원인을 총수요 부족에서 찾는 서머스와 크루그먼은 약간의 인플레이션을 무릅쓰더라도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 총수요 진작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두 견해의 차이는 단순한 ‘시각’의 문제만은 아니다. 실제로 잠재성장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총수요 증대와 더불어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작업도 병행돼야 한다. 이 둘은 양자택일이라기보다는 우선순위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예컨대 미국의 오바마케어나 한국의 누리과정 같은 정부 복지지출 증대와 불평등 완화정책이 동시에 추진될 필요가 있다. 이는 한편으로 총수요를 늘리면서 동시에 경제의 성장잠재력도 키우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나아가 확장적 재정지출의 효과를 총수요 증대에만 한정시킬 필요는 없다. 예컨대 환경 관련 인프라 투자는 단순한 지출이 아니라 경제 전반의 부가가치 생산능력을 염두에 둔 전략적 선택일 수 있다. 또 서머스가 강조한 대로 2007년 위기 촉발 이전에 선진국 경제권이 금융(=부채)에 지나치게 의존해 허구적인 성장률을 달성했고 여기서 쌓인 모순이 폭발한 게 금융위기였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금융을 일정한 정도로 억압하는 동시에 금융에 새로운 역할을 부여해주는 것도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이런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국가를 흔히 ‘발전국가’라고 부른다. 대니 로드릭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한 칼럼에서 1997년 동아시아 위기 이후 폐기되다시피 한 이 모델이 최근 장기화하고 있는 경제침체 속에 다시 힘을 얻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gg@hani.co.kr
경기변동에 따른 미국 민간투자 추이
미·유럽·일 등 선진국의 경제침체 탓
원자재 공급 신흥국들 경제도 된서리 선진경제 장기 경제정체 원인 두고
수요측-공급측 입장은 서로 달라도
“2007~08년 위기여파 장기화” 일치 누리과정 등 정부 복지지출 증대와
불평등 완화정책도 함께 추진해야
정부가 금융에 새 역할 부여도 필요 본래 장기정체는 미국 학계에서 가장 먼저 케인스주의로 ‘개종’한 학자군에 속하는 앨빈 한센이 1930년대 대불황 시기의 미국 경제를 설명하기 위해 채용한 개념이었다. 그에 따르면, 1929년 주식시장 붕괴 이후 불황이 장기화된 것은 인구증가 둔화와 기술 정체 등에 따른 총수요(소비+투자) 부족 때문이었다. 이 견해는 이후 제2차 세계대전과 그 뒤 경제가 호황을 맞으면서 자연스럽게 기각되었지만,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다시 소환되곤 했다. 이렇듯 장기정체론은 정체의 원인을 수요 측에서 찾는다는 특징이 있다. 특히 한센이 강조한 인구 요인과 기술 요인 외에 오늘날 선진경제권에서 장기정체를 낳는 수요 측 요인으로 소득 불평등 심화를 꼽을 수 있다. 문제의 원인을 수요 측에서 찾는다면 처방도 유효수요 진작이라는 전통적인 케인스주의 방식을 따를 수밖에 없다. 특히 기업의 투자가 수년째 지속적으로 부진한 가운데 실업이 증가하고 경제성장률이 떨어져 잠재성장률과 멀어지는 상황에서 정책당국은 이자율을 최대한 낮춰 기업의 투자를 독려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2007~2008년 위기 이후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완화적 통화정책을 폈던 건 대체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다만, 과연 그것이 충분했느냐는 질문은 남는다. 명목이자율이 0%에 가까운데도 여전히 저축보다 투자가 적다면, 최근 일본은행이 단행했듯이 금리를 마이너스로 내리든지, 반대로 제로금리를 유지하면서 중앙은행의 목표 물가상승률을 높여 결과적으로 실질이자율을 낮춰야 할 것이나 이것은 사실상 중앙은행의 통상적인 기능 바깥에 있다. 따라서 이런 통화정책이 여의치 않을 경우엔 정부가 적극적인 재정지출로 유효수요를 창출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2010년 이후 선진국 정부들은 긴축적 재정정책으로 일관했다. 이것은 장기정체론자들이 보기엔 총수요를 되레 축소시키는 ‘악수’였던 셈이다. 장기정체론과는 반대로, 현재 선진경제권에서 나타나는 경제침체의 원인을 수요보다는 공급 쪽에서 찾는 주장도 있다. 이를테면 2014년 초 미국 연준 의장직에서 내려온 벤 버냉키는 지금 미국이 겪고 있는 잠재성장률 둔화는 금융위기의 여파로 생산·공급 측면에서의 기술혁신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각종 투자가 주춤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일정한 ‘진통’을 동반하면서 일시적인 ‘역풍’이 걷히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얘기도 덧붙인다. 경제사가인 조엘 모키어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장기정체론이 기술진보의 역할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현대의 신기술이 낳는 생산성 및 경제후생 증대 효과는 기존 방식으로는 제대로 측정되지 않기 때문에 단순히 수치로 나타나는 것보다 실제로는 더 높은 성장이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다. 또다른 경제사가인 니컬러스 크래프츠 영국 워릭대 교수는 선진경제권 내의 지역 간 격차를 강조한다. 인구구조나 노동생산성 변동추이 등을 볼 때 미국보다는 유럽이 장기정체에 더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한편, 로버트 고든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앞으로 미국 경제성장이 25~40년간 매우 느리게 진행될 것이라면서도 그 원인을 장기정체론과는 달리 네 가지 ‘역풍’에 따른 잠재성장률 저하에서 찾고 있다. 여기서 네 가지 역풍이란 인구 노령화, 소수 인종의 높은 교육탈락률과 비싼 대학등록금에 따른 교육 수준의 저하, 소득 불평등 심화, 정부 부채 누증을 가리킨다. 그에 따르면, 서머스가 말하는 장기정체는 실제 성장률이 잠재성장률에 못 미치는 문제를 가리킨다. 반면에 자신이 보기엔 잠재성장률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에 양자 간 격차는 의미가 없다고 각을 세운다. 하지만 금융위기의 여파가 장기화하고 있다는 데 대해서는 대부분 논자들의 생각이 같다. 다만 그 원인을 수요 측에서 찾을 것이냐 공급 측에서 찾을 것이냐를 두고 입장이 양분될 뿐이다. 그렇다고 장기정체론자들이 공급 요인을 완전히 도외시하는 건 아니다. 투자 부족과 장기간에 걸친 실업이 자본 형성과 숙련 축적을 방해하면 경제의 생산잠재력 자체가 떨어질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이 장기화하면 유효수요 증대와 함께 공급 측면의 생산성 제고 노력도 동시에 기울여야 한다. 이처럼 ‘상호수렴’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폴 크루그먼은 모키어 같은 정반대 쪽에 있는 논자뿐 아니라 고든 같은 중간지대에 있는 쪽과도 차이를 분명히 하면서 장기정체론은 철저하게 수요 측의 문제라고 못박는다. 문제의 원인을 어디에서 찾느냐에 따라 정책적 함의가 달라진다고 보기 때문이다. 고든, 모키어, 버냉키 같은 공급 측 논자들이 주장하듯 저성장의 원인이 생산성 저하에 있다면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만이 저성장을 이겨내는 길이 될 것이다. 만약 생산성을 높이지 못한다면 현재와 같은 저성장체제에 적응하는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경제 구조 개혁에 몰두해야 한다는 주장이 곧바로 제기된다. 이와 반대로 현재 위기의 원인을 총수요 부족에서 찾는 서머스와 크루그먼은 약간의 인플레이션을 무릅쓰더라도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 총수요 진작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두 견해의 차이는 단순한 ‘시각’의 문제만은 아니다. 실제로 잠재성장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총수요 증대와 더불어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작업도 병행돼야 한다. 이 둘은 양자택일이라기보다는 우선순위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예컨대 미국의 오바마케어나 한국의 누리과정 같은 정부 복지지출 증대와 불평등 완화정책이 동시에 추진될 필요가 있다. 이는 한편으로 총수요를 늘리면서 동시에 경제의 성장잠재력도 키우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나아가 확장적 재정지출의 효과를 총수요 증대에만 한정시킬 필요는 없다. 예컨대 환경 관련 인프라 투자는 단순한 지출이 아니라 경제 전반의 부가가치 생산능력을 염두에 둔 전략적 선택일 수 있다. 또 서머스가 강조한 대로 2007년 위기 촉발 이전에 선진국 경제권이 금융(=부채)에 지나치게 의존해 허구적인 성장률을 달성했고 여기서 쌓인 모순이 폭발한 게 금융위기였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금융을 일정한 정도로 억압하는 동시에 금융에 새로운 역할을 부여해주는 것도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이런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국가를 흔히 ‘발전국가’라고 부른다. 대니 로드릭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한 칼럼에서 1997년 동아시아 위기 이후 폐기되다시피 한 이 모델이 최근 장기화하고 있는 경제침체 속에 다시 힘을 얻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g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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