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미 외교관들에게 전세계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얘기할 때 미국의 결함도 인정하는 게 좋다고 지시했다고 미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가 1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블링컨 장관은 이날 각국에 있는 미국대사관에 보낸 장문의 전문에서 “어디서든 민주주의와 인권을 옹호하는 것은 미국의 국익이나 국가안보와 긴장관계에 있는 게 아니다”라며 이같이 밝혔다. 민주주의와 인권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외교의 바탕으로 삼는 가치다.
블링컨 장관은 민주주의 개념이 전세계에서 도전에 처했고, 미국 또한 “정치적 양극화, 허위 정보, 정부에 대한 낮은 신뢰수준”으로 인해 그 예외가 아니라면서 “전세계에서 인권과 민주주의를 증진하는 데 있어서 미국 외교관들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다른 나라들에 요구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결함을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그것들을 비밀로 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들을 개방적이고 투명하게 마주한다”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그것은 고통스럽고, 심지어 추악할 수도 있다”면서도 “(그런 정직함이) 미국 내부의 결함을 활용해 그런 사안들(민주주의·인권)에서 우리의 글로벌 리더십을 깎아내리려고 하는 비판자들과 회의론자들을 무장해제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블링컨 장관은 미국의 결함이 무엇인지, 이를 이용해 미국을 비판하는 이들이 누군지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표출됐던 인종 불평등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불복 및 1월6일 의사당 난입 사건 등으로 제기된 민주주의 위기론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과 러시아 등은 이런 사례를 들어 ‘미국이 남의 나라에 민주주의, 인권을 말할 자격이 있느냐’는 식으로 비판해왔다.
블링컨 장관의 이같은 발언은 최근 미국 내에서 ‘비판적 인종 이론’(미국의 인종차별은 구조적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는 교육 이론)을 놓고 보수-진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공화당과 보수 진영의 반발을 살 수 있다고 <폴리티코>는 짚었다.
공화당의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은 바이든 정부가 지난 13일 미국 내 인종차별과 소수자 인권 문제를 조사해달라며 유엔 특별보고관을 초청하겠다고 발표한 것을 두고, 바이든 행정부가 반정부 시위가 일어난 쿠바를 압박하기보다 미국을 때리는 데 더 주력한다고 비판했다. 루비오 의원은 지난 15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무슨 풍자 웹사이트에 나오는 얘기같다”고 비꼬았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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