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아프가니스탄 사태 관련 연설을 하고 있다. 워싱턴/UPI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이 순식간에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의 수중에 들어간 데에는 맥없이 두 손 든 아프간 정부군이 있었다. 미국이 20년 동안 아프간에 돈과 자원을 쏟아붓고도 아프간 군과 경찰을 정예화하는 데 실패했다는 얘기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각) 백악관 연설에서 미국이 1조 달러를 들여 30만명의 아프간군을 훈련시키고 무장시켰다면서 “우리는 그들에게 월급 등 필요한 모든 도구를 줬고 스스로의 미래를 결정할 기회를 줬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그 미래를 위해 싸울 의지는 우리가 그들에게 제공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탈레반의 세력 확장에 무기력하게 항복하거나 도망친 아프간군에 대한 한탄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아프간군의 전면적 붕괴는 오랫동안 누적된 결과라고 짚었다. 백지 상태의 아프간 군·경을 미 국방부의 중앙집권식 지휘체계와 복잡한 관료주의를 모델로 구축할 수 있다고 여긴 것부터가 자만이었다는 것이다.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은 “그들은 전투 국민으로서 아프간인들의 강점을 알아내고 그 위에서 구축하는 게 아니라 서구 군대를 훈련시키려고 했다”고 말했다.
아프간군은 또한 정부에 대한 불신과 지휘부의 부패로 인해 사기가 낮다. 미국의 철군 발표 뒤 탈레반이 진격해나갈 때 아프간군에서는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의 정부를 위해 싸우는 게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없다는 믿음이 커졌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아프간군은 서류상으로 약 30만명이지만 이는 군 간부들이 급여를 가로채려고 허위 기재한 ‘유령 병사’들이 포함된 것이고, 실제 병력은 그 6분의 1이라고 미 관리는 말했다. 중간에서 빼돌리는 간부들 때문에 병사들은 탄약 등 물자와 식량 부족에 시달렸다. 집에서 먼 곳에 배치될 경우, 가족을 지키기 위해 부대를 떠나 집으로 가는 경우들도 있다고 한다.
높은 문맹률도 장벽이다. 지난 10여년 동안 미국이 수백만 명의 아프간 어린이들을 학교에 등록시켰어도, 아프간군 신병들 가운데 2~5%만이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의 독해력을 갖고 있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전했다. 형제·자매의 이름은 나열해도 몇 명인지 숫자를 말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럼에도 지난달 8일 연설에서 아프간군의 전투력에 신뢰를 표했고, 1975년 미국의 베트남전 패망 당시의 사이공 탈출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 언론과 의회는 탈레반의 아프간 정권 재장악 속도를 예상 못한 바이든 정부의 ‘정보 실패’를 벼르고 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16일 백악관에서 약 20분 동안 연설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고 퇴장했다. 이날 국방부의 언론 브리핑에서 군 당국자는 정보 실패에 관한 질문에 “답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프간 혼란의 책임을 물어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해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선임보좌관을 지낸 브랫 브루언은 이날 <유에스에이 투데이> 기고에서 “함정과 문제의 가능성을 확실히 회피하면서 대통령의 목표(아프간 철군)를 달성하는 방법을 알아내는 게 설리번의 몫인데 그런 일은 분명히 일어나지 않았다”며 경질을 주장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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