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대원들이 17일 아프가니스탄 카불의 한 시장에서 순찰을 돌고 있다. 카불/AFP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탈레반이 17일(현지시각) 전국에 ‘사면령’을 발표하는 등 회유책을 내놓고 있다. 과거를 묻지 않을 테니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 탈레반의 공포정치를 경험했던 시민들은 불안한 눈빛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17일 <알자지라> 보도를 보면, 탈레반은 이날 문화위원회 소속 에나물라 사망가니의 명의로 전국에 사면령을 내렸다. “모두에 대한 일반 사면령이 선포됐기에 확실한 신뢰를 갖고 일상을 시작하라”는 것이다. 탈레반은 공무원들에 대해 복직을 촉구하면서, 여성들에 대한 존중도 약속했다. 탈레반은 “정부 구조가 완전히 확실하지는 않다”며 “하지만 완전한 이슬람 리더십이 있으니 (여성, 공무원 등) 모든 이들은 정부에 합류해야 한다”고 밝혔다.
과거 이슬람 율법을 바탕으로 여성들의 취업과 교육 등을 인정하지 않던 태도를 거두겠다고 거듭 공언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탈레반 대원들이 카불 주민들의 집에 침입했다는 보도가 현지 언론을 통해 나오자, 탈레반 군사위원장은 이날 성명을 통해 주민들의 집에 출입하지 말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전날의 공황 상태가 진정된 거리에는 조용한 공포감이 흘렀다고 <비비시>(BBC)와 <시엔엔>(CNN) 등이 전했다. 거리에 검문소가 설치되고 소총을 멘 탈레반 대원들이 흩어져 오가는 차량을 검문했다. 아프간 텔레비전 방송들은 드라마와 광고 송출을 중단하고 종교 방송을 틀기 시작했다고 <가디언>이 보도했다. <시엔엔>은 자사 특파원이 탈레반을 취재하려 하자, 여성이라는 이유로 “옆으로 물러나라”며 쫓아냈다고 전했다. 거리는 조용하고, 카불의 호텔들이 틀어놓던 배경음악마저도 끊긴 상황이다.
여성들의 통행은 사뭇 줄었다. 온몸을 천으로 가리는 부르카를 쓰거나, 마스크에 스카프만 쓴 여성도 거리에 있었다. 그러나 현재 카불을 장악한 탈레반은 이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는 눈치라고 <비비시>가 전했다. 지도부가 여성의 부르카 착용과 관련해 아직 지침을 내린 것은 아니지만, 이날 카불 서부 지역 한 모스크에서 탈레반 조직원들이 여성에게 부르카나 히잡을 착용하라고 강요하는 방송을 했다고 <가디언>이 보도했다. 탈레반이 아직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가운데 여성들은 부르카 구입을 서두르고 있다. 부르카를 사는 여성들이 늘면서 부르카 가격이 한벌에 200아프가니(3000원)에서 최대 3000아프가니(4만5000원)까지 올랐다고 전해졌다.
탈레반의 집권을 반감 없이 받아들이는 주민도 있고, 일부에선 탈레반 대원들에게 “안녕, 행운이 깃들길 빈다”며 인사를 하는 모습도 목격됐다고 외신은 전했다. 카불의 이런 분위기는 앞서 탈레반이 점령한 다른 도시에서도 느껴진다고 <시엔엔>이 전했다. 아프간의 북서부 도시 헤라트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이스마헬(40)은 “전체 도시가 일상을 찾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고 가게들도 모두 문을 다시 열었다”고 말했다.
최현준 기자, 박병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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