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아프가니스탄 상황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수를 오는 31일까지 완료한다는 기존 방침을 고수하기로 했다. 그때까지 아프간에 있는 미국인과 아프간 조력자 등을 모두 대피시키되, 연장이 필요할 경우에 대비한 비상계획도 세우기로 했다. 미국이 20년 끌어온 아프간 전쟁에서 발 빼는 일이 여전히 혼란과 불확실성이 가득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각) 백악관 연설에서 “우리는 현재로서 8월31일까지 끝내기 위한 속도로 가고 있다”며 “나는 우리의 임무를 반드시 완료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앞서 이날 오전 주요 7개국(G7) 정상들과 한 긴급 화상회의에서도 참가 정상들에게 이렇게 밝혔다. 이달 말 이후로 시한을 연장하자는 일부 정상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미 국방부 관계자는 아프간에 배치된 약 6000명의 미군 가운데 대피 작업에 필수적이지 않은 일부 부대는 이미 철수하기 시작했다고 <워싱턴 포스트>에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달 말 시한을 유지한 이유는 탈레반의 미군 공격 위협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작전을 수행하는 매일 우리 군대에 위험이 추가된다”며 “(대피 작업을) 더 일찍 끝낼수록 더 좋다”고 말했다. 탈레반은 바이든 대통령이 스스로 정한 시한인 8월31일을 ‘레드 라인’이라며 이를 넘길 경우 “결과가 따를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특히 이슬람국가 호라산(ISIS-K)으로부터의 위협이 커지고 있다며, 이달 31일까지 대피 임무를 완수하는 것은 “탈레반이 계속 협조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아프간 탈출을 원하는 민간인이 아프간 수도 카불의 공항에 접근하는 것을 탈레반이 계속 허용하고 미군의 작전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는 탈레반의 말이 아닌 행동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앞서 23일 윌리엄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카불에서 탈레반의 실질적 지도자인 압둘 가니 바라다르와 비밀회동을 했지만 ‘미군 철수 시한 연장’에 실패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CIA 출신 로버트 베어 <시엔엔> 정보분석가는 탈레반이 모든 카드를 쥐고 있고, 바이든 정부에 선택권이 없다고 지적했다.
대피 작업에 속도가 붙고 있는 점도 이날 결정의 한 배경이다. 백악관은 지난 23일 오전 3시부터 24시간 동안 약 2만1600명이 카불 공항을 통해 아프간을 빠져나왔다고 24일 밝혔다. 이는 지난 14일 대피 작업을 시작한 이래 하루 최대 규모다. 14일부터 현재까지 모두 5만8700명이 아프간에서 대피했다. 존 커비 미 국방부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지난 며칠 간의 속도를 유지할 수 있다면 주말까지 약 10만 명을 대피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간에 있는 미국인을 약 1만~1만5000명, 아프간 조력자와 그 가족을 5만~6만5000명이라고 최근 추정하고, 이밖에도 아프간을 탈출하고자 하는 모든 이를 대피시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이날 발표에 미국 안팎에서 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다. 우선, 그가 말한대로 탈레반이 협조할지 미지수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24일 기자회견에서 “외국인이 아닌 아프간인들이 카불 공항으로 가는 것을 더는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 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탈출을 원하는 아프간인들 중 많은 이들은 남겨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시엔엔>(CNN)은 전했다.
아프간 탈출 관문인 카불 공항의 안전을 지켜온 미군이 철수하면, 아프간에 있는 다른 나라 민간인들의 대피 위험도 커진다. 이날 주요7개국 정상들의 화상회의에서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철군 시한 연장을 압박한 데는 이런 이유도 있다.
미 의회에서는 이날 공화당 뿐 아니라 민주당에서도 “철군 시한을 연장하고 모든 조력자들이 탈레반으로부터 안전을 찾을 수 있도록 국제 파트너들과 협력해야 한다”(진 샤힌 상원의원)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제앰네스티 미국지부도 시한을 연장해 최대한 오랫동안 대피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복잡한 사정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은 시한 연장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그는 국방부와 국무부에 ‘8월31일까지 철군 완료’ 시간표를 조정할 필요가 발생할 경우에 대비한 비상계획 마련을 지시했다. 또 주요 7개국 정상들에게도 시한 연장 가능성을 열어놨다고 <시엔엔>은 보도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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