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과도정부의 압둘 가니 바라다르 부총리의 모습이 며칠째 관찰되지 않고 있다. 그 때문에 7일 공개된 정부 구성을 놓고 내각 구성원들과 알력을 빚었다는 설이 나돌고 있다. 카불/AFP 연합뉴스
탈레반 내부에서 최근 정부 구성을 놓고 외교파(온건파)와 무장파(과격파) 사이에 알력이 진행 중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탈레반의 대외 협상을 주도하는 등 2인자로 알려졌던 압둘 가니 바라다르 부총리가 며칠째 모습을 안보여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싣고 있다.
영국 <비비시>는 14일 탈레반 소식통들을 인용해 이 조직의 공동 창립자이자 미국과 협상을 주도해 온 압둘 가니 바라다르 부총리가 최근 아프간 대통령궁에서 내각 구성원들과 논쟁을 벌였다고 보도했다. 이 소식통은 바라다르 부총리와 칼릴 하만 하카니 난민담당 장관이 정부 구성을 놓고 거친 말을 주고받았고, 추종자들은 옆에서 싸움을 벌였다고 전했다. 하카니는 탈레반의 내의 강경무장 분파인 ‘하카니 네트워크’ 소속이다.
하카니 네트워크는 탈레반의 강경 무장투쟁을 주도한 세력으로, 미국에 의해 테러단체로 지정됐다. 수장 시라주딘 하카니는 이번 정부 구성에서 치안을 담당하는 내무장관을 맡았다. 방송은 탈레반과 외부 세계를 잇는 통로인 ‘카타르 대표부’의 한 고위 인사도 지난주 논쟁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인정했다고 전했다.
소식통들은 바라다르 부총리가 과격파가 약진한 7일 과도정부 구성에 불만을 품으면서 갈등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성공한 혁명 뒤에 불거지기 마련인 ‘주도 세력’ 논쟁이다. 바라다르는 자신이 주도한 ‘도하 평화협정’의 성과를 강조하며 혁명의 성공에 외교가 큰 역할을 했다고 믿는 반면, 하카니 네트워크 구성원과 지지 세력들은 전투를 통해 승리가 이뤄졌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라다르 부총리가 최근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도 이런 알력의 결과로 해석되고 있다. 탈레반 소식통들은 그가 현재 카불을 떠나 남부 칸다하르로 여행 중이고 밝혀다. 13일 공개된 바라다르로 알려진 육성 녹음을 들어보면, “현재 내가 어디에 있던 간에, 우리 모두는 괜찮다. 여행 중이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탈레반은 그가 최고 지도자 하이바툴라 아훈자다를 만나려 칸다하르로 갔다고 했지만, 나중엔 “그가 지쳤고 휴식을 원했다”고 밝혔다.
바라다르 부총리는 2001년 미국의 아프간 침공 때 체포돼서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됐다 풀려난 뒤 미국과 협상을 주도해 왔다. 지난 2020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과 통화하는 등 미국 정상과 직접 대화한 첫 탈레반 인사이다. 2020년 2월 도하 평화협정을 통해 아프간에서 미군 철수를 이끌어냈다. 탈레반 온건파를 대표하는 그는 이번 정부 구성에서 정부 수반인 총리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돼 왔다. 하지만, 실제 정부 구성에서 부총리에 머물렀고, 하카니 네트워크 등이 강경 무장파인사들이 군·경 등 실권을 장악하며 득세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