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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미국의 제재 남발과 역효과

등록 2021-10-07 08:59수정 2022-02-10 18:34

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이용인의 글로벌 안테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3월22일 중국의 첨단 제품에 지식재산권 관세를 부과하는 대통령각서에 서명할 준비를 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경제제재를 남발해 역효과를 낳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REUTERS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3월22일 중국의 첨단 제품에 지식재산권 관세를 부과하는 대통령각서에 서명할 준비를 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경제제재를 남발해 역효과를 낳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REUTERS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북한이나 이란 등 적대국에 가하는 이른바 ‘징벌적 제재’ 정책과 관련해 개편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7월5일 보도했다. 미국의 경제 압박이 “적대국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거나 주요한 외교적 합의를 끌어내지 못한” 점을 검토 배경으로 꼽았다. 여름이 끝날쯤이면 새 정책이 나올 거라고 했지만 9월 말 현재 후속 보도나 행정부의 발표는 없다.

이런 가운데 저명한 국제정치학자인 미국 터프츠대학교의 대니얼 드레즈너 교수가 격월간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 9/10월호에 미국 행정부의 ‘제재 남용’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글을 실었다. 강대국의 대표적인 경제강압정책으로 꼽히는 제재를 미국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해 ‘효과도 없어졌고, 너덜너덜해졌다’는 게 핵심 요지다. 한반도 문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미국의 대북 제재와 미-중 무역전쟁에 대한 시사점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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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트럼프 때 제재 급증

제재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들어 급증했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들어 정점으로 치달았다. 드레즈너 교수는 오바마 행정부 1기 동안 인권침해, 핵비확산, 영토주권 침해 등의 이유로 매년 평균 500개의 개인∙기업∙단체가 제재 대상으로 지정됐다고 밝혔다. 이 수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들어 두 배로 늘었다고 한다.

실제 미국 민주당 쪽 싱크탱크인 신미국안보센터(CNAS)가 2020년 2월 내놓은 ‘숫자로 본 제재’ 보고서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 집권 첫해인 2009년 제재 대상은 320곳이었으나 이듬해 619곳으로 치솟았다. 이어 500~600곳 사이를 오가다 임기 마지막 해인 2016년에 664곳을 기록했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서는 2017년 880곳, 2018년 1457곳, 2019년 785곳이었다. 2018년 미-중 무역전쟁으로 제재 건수가 많아지긴 했으나, 전반적으로 트럼프 행정부 들어 제재에 더욱 집착했음을 알 수 있다. 수치로 집계된 것은 없지만 바이든 행정부 들어서도 미얀마(쿠데타), 니카라과(정치 탄압), 러시아(해킹)에 대한 제재가 이어졌다.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뀌었어도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드레즈너 교수는 그동안 미국이 경제제재를 사용하는 방식에 수많은 문제가 있었으며, 따라서 애초 의도했던 외교 목표도 달성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가장 큰 문제는 ‘최대의 압박’이라는 제재 지렛대로 ‘최대의 요구’를 하고 있는데, 두 개가 똑같은 값어치를 갖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은 제재로 북한과 이란에 비핵화를 요구하고, 베네수엘라에 사회주의 통치의 종식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들은 ‘레짐 체인지’(정권 교체)나 마찬가지다. 상대 국가들이 엄청난 양보를 하는 대신 경제 고통을 감내하기로 선택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두 번째 문제는 미국이 다른 강대국에도 점점 더 편의주의적으로 제재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상대 국가의 규모가 클수록 제재에 저항하기 위해 사용할 자원이 더 많은데도 말이다. 드레즈너 교수는 이런 이유로 “트럼프 행정부가 2018년 중국에 부과했던 수많은 관세와 제한적 조처들은 어떤 실질적인 양보도 받아내는 데 실패했다”며 “대중국 제재는 역효과를 낳았고 미국의 농업과 첨단 부문에 손실을 끼쳤다”고 비판했다. 중국산 제품에 대한 미국 평균 관세는 3% 안팎이었으나 양국 무역갈등 이후 20%까지 치솟았다.

국제신용평가업체 무디스가 2021년 5월 내놓은 조사결과는 이런 상황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트럼프 행정부가 임기 동안 중국산 수입품에 부과한 관세로 발생한 추가 비용의 93%가량을 미 수입업자들이 흡수했다. 이는 대부분 가격 인상 형태로 미국 소비자들에게 전가됐다. 중국 수출업체들은 7% 정도의 비용만 부담했다. 미국 입장에선 관세를 올렸지만 본전도 못 찾은 꼴이다.

세 번째로 제재를 부과해놓고 해제하기는 지나치게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미국 대통령들은 대외정책이 약해졌다는 비난을 받을까 봐 제재 해제 시도를 꺼린다. 또한 북한, 쿠바, 러시아 등을 향한 핵심 제재 내용이 법률로 규정돼 있어 의회만 철회할 수 있다. 대통령이 적대국과 관계 회복을 위해 제재 해제를 하려 해도 양극화된 미 의회 분위기를 고려하면 의결정족수를 확보하기 쉽지 않다. 미국의 제재 해제 전망이 불확실하면 상대국 입장에선 힘들게 협상할 동기가 사라진다. 드레즈너 교수는 “이것이 1990년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미국과 협상하기를 거부하고 이란이 트럼프 행정부와 협상하기를 거부한 이유 중의 하나였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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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제재 집착하는 이유

드레즈너 교수는 제재를 남발하고 있지만 제재 효과에 대한 평가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미 의회 산하 회계감사원(GAO)의 2019년 보고서를 인용해 “연방정부조차도 제제가 언제 작동하고 있는지 항상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재무부, 국무부, 상무부도 미국의 광범위한 정책 목표 달성에 제재가 효과적인지 평가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제재 부과가 일상적으로 관성처럼 돼버렸다는 뜻이다.

미국은 왜 그렇게 제재에 집착하고 남발하는 것일까? 드레즈너 교수는 역설적으로 “미국이 쇠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군사력이나 외교 등 과거에 미국이 했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워졌다. 또한 한 세대에 걸친 아프가니스탄 전쟁 후유증으로 미국 정책입안자들이나 국민은 대규모 군사 개입을 꺼린다. 결국 “미국 대통령의 화살통에 남아 있는 화살은 거의 없어”졌으며 “재빠르고 손쉽게 사용할 제재라는 도구에 손을 뻗친다”는 것이다. 그는 “제재를 너무 자주 사용해 너덜너덜해졌다”며 제재 사용 빈도를 확 낮추고, 제재의 부과와 집행, 해제에 대한 조건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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