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만명의 주민이 음식·물도 없이 고립되어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 도시 마리우폴이 유령 도시처럼 변했다. 마리우폴/UPI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14일로 19일째 접어든 가운데 민간인들이 열흘 이상 고립되어 있는 우크라이나 동부 마리우폴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국제적십자위원회는 13일(현지시각) 성명을 내어 마리우폴에 고립된 민간인 수십만명의 목숨을 구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적십자위원회는 “음식, 물, 의약품 같은 필수품도 바닥났다”며 “적십자 요원을 포함한 민간인 수십만명이 난방도 되지 않는 지하 대피소에 갇혀 있다”고 전했다. 이어, 민간인과 군인들의 주검이 수습되지 못한 채 거리에 방치되어 있다며 “사람들의 고통이 그야말로 막대하다”고 개탄했다. 페터 마우어 위원장은 “교전 당사국들에 인도주의적 책무를 최우선으로 할 것을 촉구한다”며 “주민들이 일주일 이상 삶과 죽음의 경계 속 악몽에 시달리는 상황을 당장 끝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마리우폴 시 당국은 주민들의 고립이 12일째 접어들면서 지금까지 2187명의 주민이 숨졌다고 밝혔다. 터키 정부는 자국민 86명도 마리우폴의 이슬람 사원에 대피한 채 발이 묶여 있다며 러시아에 이들의 구조를 요청했다. 마리우폴이 속한 동부 도네츠크주는 러시아의 침공 이전부터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과 우크라이나 군의 충돌이 끊이지 않은 주요 분쟁 지역이다.
수도 키이우(키예프)를 둘러싼 전투가 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키이우 서쪽의 주요 보급 통로인 지토미르에서도 민간인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은 40발 이상의 로켓 공격으로 민간인과 군인 수십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한 주민은 “비행기들이 사람들 머리에 닿을 만큼 낮게 날고 있다”고 말했다. 지토미르를 통해 우크라이나 서부에서 유럽의 지원 물품이 키이우로 들어온다. 또 피난민들은 이곳을 거쳐 폴란드 등 유럽 다른 국가로 이동해 왔다.
벨라루스쪽에서 내려온 러시아군이 장악하고 있는 키이우 북쪽 지역에서는 8일째 현장 상황이 외부로 거의 전해지지 않고 있다. <비비시>는 키이우에서 북쪽으로 65㎞ 떨어진 이반키우의 통신이 모두 끊겨 현지 상황을 알 수 없다며 이 지역에서는 인도주의 통로를 통한 민간인 대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방송은 현지 주민들과 8일 전 마지막으로 연락을 한 바 있다며 당시 주민들은 식량 부족을 호소했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주요 교전 지역에 인도주의 통로가 확보된 이후 지금까지 14만명 정도의 민간인이 대피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13일에는 키이우와 동부 루한스크 지역에서 각각 수천명의 주민이 도시를 빠져나갔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체르노빌 원전에 전력이 다시 공급되고 있지만 거의 3주째 연속으로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이 정신적·육체적으로 지쳐 일부 업무가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원자력기구는 직원들이 직면한 상황이 날로 무시무시해지고 있다며 원전 안전 확보를 위한 지원 노력이 더욱 시급해졌다고 지적했다.
한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협상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전망들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대표단의 일원인 미하일로 포돌랴크 대통령실 고문은 소셜미디어 텔레그램에 공개한 영상에서 러시아가 건설적으로 협상에 임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가 이제 자신들을 둘러싼 현실을 좀더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며 “며칠 안에 일정한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러시아 대표단 소속인 레오니드 슬루츠키 하원 외교위원장도 협상에 진전이 있었다면서 “개인적으로 며칠 안에 두쪽이 합의문에 서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두쪽의 구체적인 협상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무장관은 프랑스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최악 상황이 아직 우리 앞에 있다”며 협상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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