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위성통신 관련 업체 ‘맥사 테크롤로지’가 러시아의 폭격을 당한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의 아파트 건물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모습을 찍은 위성 사진을 공개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정부가 21일(현지시각) 남동부 주요 교전지인 마리우폴에서 군을 철수시키고 항복하라는 러시아의 요구를 거듭 거부하면서 마리우폴을 둘러싼 전투가 더욱 격화하고 있다. 러시아는 마리우폴을 포위한 채 3주째 점령을 시도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군의 격렬한 저항에 부닥치고 있다. 마리우폴은 정치·경제·군사적 요충이어서 두 쪽 모두 포기할 수 없는 곳이다.
러시아로서는 2014년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에 접근할 육로 확보 측면에서 마리우폴이 특히 중요하다고 <에이피>(AP) 통신 등이 지적했다. 마리우폴은 돈바스 지역의 친러시아 분리독립 세력 점령지와 크림반도 사이에 위치해,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육로로 접근하는 걸 가로막는 구실을 한다. 크림반도에는 러시아의 흑해 함대가 주둔하고 있어 안정적 육로 확보는 군사적 중요성이 특히 크다. 영국의 예비역 장성 리처드 배런스는 <비비시>(BBC) 방송에 “러시아군이 러시아와 크림반도를 육로로 연결하는 데 성공한다면, 주요한 전략적 승리를 거두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가 마리우폴을 장악하면, 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 러시아로 둘러쌓인 아조우해 연안을 포함해 우크라이나의 흑해 연안 중 80% 정도를 손에 넣게 될 것이라고 <비비시>는 지적했다. 현재 러시아군은 흑해 연안 지역 중 헤르손부터 마리우폴 주변까지를 점령한 상태이며, 아직 점령하지 못한 흑해 서쪽 끝의 항구 도시 오데사에 대한 공세도 차츰 강화하고 있다.
마리우폴은 경제 측면에서도 중요한 도시다. 이 도시는 우크라이나의 철광석, 석탄, 곡물 등을 수출하는 주요 거점이다. 마리우폴이 러시아 손에 넘어갈 경우, 우크라이나는 주요 수출길이 막히며 심각한 경제적 파격을 입게 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전세계 밀 수출량의 30% 가량을 공급하고 있어, 러시아의 마리우폴 장악은 세계 농산물 시장의 러시아 의존도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마리우폴을 둘러싼 전투는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의 ‘자존심’과 명분이 걸린 대결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군과 친러시아 반군은 2014년 이 지역에서 벌어진 ‘돈바스 전쟁’ 기간 중 마리우폴을 놓고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의 신나치 등 극우 집단이 ‘아조우 대대’라는 무장 세력을 구성해 친러 세력으로부터 마리우폴을 지켜냈다. 이 집단은 2014년 11월 우크라이나 내무부 소속의 ‘아조우 특수작전 파견대’로 정식 편성됐으며 이번 전투에서도 마리우폴 교전을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의 목표로 ‘탈나치화’를 내세우는 것도 구체적으로는 이 조직을 겨냥한 것이다. 러시아는 ‘아조우 대대’가 우크라이나 동부의 러시아계 주민들에 대한 테러를 일삼아 왔다고 보고 있다. 미국 정부도 이 조직의 극우 성향을 문제 삼아, 2015년 금융 지원 등을 금지하는 제재를 가했다가 이듬해 제재를 푼 바 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