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바르샤바 한 거리에 걸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풍자 이미지. 바르샤바/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한겨레S 뉴스레터 구독하기 https://bit.ly/319DiiE
지난달 24일 시작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한달을 넘고 있다. 김혜윤·노지원 <한겨레> 기자는 지난 6일 우크라이나 접경지인 폴란드로 급파돼 전쟁 이후 피란민이 된 이들의 삶을 취재하고 돌아왔다. 폴란드 바르샤바 공항으로 입국한 뒤 열차와 차량으로 접경지인 코르초바, 메디카, 프셰미실 등에 이동해 전쟁터가 된 고향을 등지고 가족·친구들과 뿔뿔이 흩어진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만났다. 난민 쉼터와 피란민 열차 동행취재, 마르친 오치에파 폴란드 국방차관 인터뷰 등으로 전쟁의 상처를 생생하게 전한 뒤 19일 한국으로 돌아왔다. 14일간의 취재기를 들었다. <편집자>
나라를 지키러 떠난 남편을 뒤로하고 두 딸과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은 안나는 자신의 직업을 과거형으로 소개했다. 사진작가 ‘였다’고. 지난 10일 폴란드크라쿠프로 향하는 완행열차에서 만난 그는 내가 들고 있던 카메라에 관심을 가지며 내 직업을 궁금해했다. 안나는 휴대전화에서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며 이런 사진을 ‘찍었다’고 말했다.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에서 인물 전문 사진작가로 일했던 안나는 폴란드 국경을 넘고선 그저 난민에 불과했다. 키이우를 떠나고 한 달 동안 7번 머무는 곳을 옮겨 다녔다. 딸들은 엄마에게 “어디 가면 오래 머물 수 있냐”고 묻는다. 아빠를 그리워하는 둘째 딸 아일리샤는 “기차로 이동하는 일이 제일 지겹다”고 말했다.
16일 저녁 폴란드 바르샤바 서부 버스터미널 들머리에서 기부상자에 담긴 옷을 고르러 간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어린이. 바르샤바/김혜윤 기자
7일(현지시각) 폴란드 프셰미실 중앙역 승강장에서 우크라이나에서 딸을 데리고 국경을 넘은 한 여성이 취재진과 이야기를 하다 우는 모습을 딸이 바라보고 있다. 프셰미실/김혜윤 기자
‘태풍의 눈’에서 취재하는 기분이었다. 프셰미실을 떠나 크라쿠프 등 자신들을 재워줄 친척이나 지인들이 있는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난민들과 함께 열차에 몸을 실었다. 폴란드로 가기 전에 혹시 몰라 방탄조끼와 헬멧을 챙겼다. 바로 옆 나라인 우크라이나 도시들이 초토화된 사진을 보다 보니 폴란드 국경 지역도 위험하진 않을까 생각했다. 막상 바르샤바에서 제슈프로, 제슈프에서 1시간을 더 달려 도착한 국경도시 프셰미실은 조용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은 도시의 고요함을 느끼지 못하는 듯 했다.
한 쉼터로 들어서자 경찰관이 말했다.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이 카메라 소리에 영향을 받을 수 있어 취재할 수 없다”고. 거의 모든 쉼터에 여성·아동 전용 공간이 마련됐는데, 한 자원봉사자는 “너무 큰 일을 겪었기 때문에 마음을 내려놓고 쉴 공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을 찬찬히 살펴봤다. 유난히 허공을 바라보는 사람이 많았다. 난로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이들도 깊은 생각에 잠긴 사람이 많았다.
지난 6일 찾았던 폴란드 메디카 지역 국경검문소는 교통 경찰의 호루라기 소리를 빼면 조용했다. 가족·친구들과 연락이 닿지 않아 마중나온 사람들은 국경검문소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입김이 나오는 추운 날씨에도 짧게는 1시간 길게는 5시간 넘게 서서 지인을,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던 이들을 만나면 안도하는 미소를 지으며 서로를 얼싸안았다. 반면 미소짓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검문소를 응시하는 이들의 얼굴 표정은 굳어갔다. 난 기다리는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카밀라’(KAMILA)라는 손글씨가 적힌 팻말을 든 남성은 두꺼운 겨울 옷을 입고 차가운 공기 속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대형 주차장에 들렀을 때 일이다. 우크라이나에서 출발해 폴란드에 있는 여러 도시로 향하는 버스들이 잠시 정차하는 곳이다. 여기서 만난 우크라이나 2세 미셸(44)은 우크라이나에서 건너온 친척들을 데리러 15시간을 운전해 이곳에 왔다고 했다. 미셸의 사촌들과 조카는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에서 버스를 타고 폴란드 국경을 넘었다. 이들 중 한명은 남편이 우크라이나에 있지만 한살배기 아기를 위험한 곳에 둘 수 없어 사촌 언니인 미셸의 집으로 향하게 됐다고 했다.
6일(현지시각) 폴란드 메디카 국경검문소 들머리에서 시민들이 우크라이나에서 오는 가족과 지인을 기다리고 있다. 메디카/김혜윤 기자
우크라이나 키이우 출신 안나(37)가 10일(현지시각) 낮 폴란드 프셰미실에서 크라쿠프로 향하는 열차에서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있다. 전쟁이 나기 전 키이우에서 사진작가로 일했다. 그는 언제쯤 다시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프셰미실/김혜윤 기자
우크라이나 2세인 미셸(44)이 6일(현지시각) 오후 폴란드 코르초바 국경검문소에서 바르샤바로 가는 버스를 타고 인근 주차장에 내린 사촌동생들과 조카를 반기고 있다. 미셸은 이들과 함께 15시간을 차로 이동해 벨기에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갈 예정이다. 코르초바/김혜윤 기자
취재를 할수록 이 전쟁이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지 물어보게 됐다. 바르샤바의 우크라이나 난민 쉼터에도 들렀다. 이곳에선 기부 물품 상자들이 도착할 때마다, 피란민들이 모여들었다. 기저귀가 제일 먼저 동났다. 한 엄마가 이제 혼자 걷기 시작한 듯한 아이와 함께 옷을 고르기도 했다. 색이나 디자인, 옷감을 따지지 않고 오직 크기만 맞으면 속옷을 들고 있는 자원봉사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퍼즐이 들어있는 상자도 있었는데, 아이들만이 천진난만하게 이곳에 모여 퍼즐을 골랐다.
아이들의 영양 상태는 걱정스러웠다. 제대로 된 식사를 챙기기엔 보살펴야 할 아이가 너무 많거나 지낼 장소를 마련하느라 보호자가 정신없었다.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만든 음식을 쉼터에서 나눠주긴 했지만 먹으러 가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이제 막 유치가 나고 있을 듯한 아이의 입 주변에는 당 함유량이 높은 음식들이 묻어있었다. 태풍을 이미 한차례 겪은 이들을 태풍의 눈에서 만나 취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폴란드에서 취재가 거의 마무리 될 즈음이었다. 프셰미실 초등학교에서 본 모습은 유독 인상 깊다. 이 학교는 가족과 함께 국경을 넘은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을 무조건 다 받았다. 우크라이나 아이들은 한국의 주민등록번호와 비슷한 페셀(PESEL)이 없어도 누구나 학교에 등록할 수 있었다. 정원이 15명이던 학급 학생 수가 30명이 됐다. 배움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교육철학으로 아이들에게 도시락과 책가방은 물론 심리치료까지 지원하고 있다. 학부모의 반발은 찾아볼 수 없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7일(현지시각) 낮 폴란드 프셰미실 중앙역 대합실에서 어린이가 바닥에 담요와 외투를 깔고 잠을 자고 있다. 프셰미실/김혜윤 기자
15일(현지시각) 오전 폴란드 프셰미실 제2 초·중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교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원래 이 학교의 수업 정원은 15명이지만 밀려드는 난민 학생들로 인해 정원이 30명으로 늘어났다. 프셰미실/김혜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