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시민들이 의약품 부족을 우려해 사재기에 나서면서 의약품 공급 차질이 이어지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약국에서 시민들이 약품을 사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AP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길어지면서 러시아에서 주요 의약품 부족이 심각해지고 있다. <에이피>(AP) 통신은 4일(현지시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일부 시민들이 의약품을 사재기하는 일이 빚어졌고 최근에는 수도 모스크바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주요 의약품을 구하기 힘든 상황으로 발전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주요 도시 카잔의 한 주민은 아버지가 쓰는 혈액 항응고제를 도시 내 어느 약국에서도 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은 갑상선 치료제, 당뇨 환자용 인슐린 등 전문 치료제부터 아동용 진통제까지 다양한 의약품을 구하는 데 며칠씩 걸리고, 끝내 구하지 못하는 일도 있다고 호소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모스크바의 심장 전문의 알렉세이 에르리히는 “의약품이 부족할 여지가 크지만 얼마나 상황이 심각한지는 모르겠다”며 “내가 맡은 환자 가운데 일부는 혈압약이 부족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내가 아는 의사들로부터 외과 수술 등에 쓰이는 값비싼 중요 의약품 수급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의약품 부족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인 3월 초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 러시아 최대의 의료인 온라인 커뮤니티가 지난달 중순 3천여명의 의사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 소염제, 위장 질환 치료제, 경련 진정제 등 80개 품목의 의약품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 당국은 초기의 의약품 부족은 일부 주민의 사재기나 서방의 경제 제재에 따른 운송 차질 등 일시적인 요인 때문에 벌어졌다고 밝혔다. 미하일 무라시코 보건부 장관은 의약품 공급에 문제가 없다며 시민들에게 사재기 자제를 거듭 촉구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운송 차질 문제는 이제 거의 해소됐으나, 시민들의 사재기는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약 시장 분석 기업 ‘아르엔시(RNC) 파마’의 니콜라이 베스팔로프 개발 책임자는 시민들이 의약품 사재기에 나서면서 1년이나 1년 6개월치 물량이 한달 안에 공급되는 일까지 생기고 있다고 전했다. 서양의 주요 제약 회사들이 러시아에서 철수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지만, 주민들의 불안감은 해소되지 않고 있는 탓이다. 베스팔로프는 “불안이 진정되기까지는 의약품 공급 차질이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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