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방, 식수 등까지 끊긴 채 한달 이상 고립되어 있는 우크라이나 마리우폴 주민들이 5일(현지시각) 야외에서 음식을 조리하고 있다. 마리우폴/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최악의 재앙을 맞고 있는 동남부 도시 마리우폴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바뀌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12만명 이상의 주민이 여전히 폐허 속에 발이 묶인 가운데 주민 대피 작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바딤 보이첸코 마리우폴 시장은 5일(현지시각) 마리우폴 인근 자포리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러시아의 집중 공격을 당하고 있는 마리우폴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어가고 있다고 경고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전했다. 보이첸코 시장은 “우리 추산으로는 12만명의 주민이 여전히 도시에 남아 있다. 현재 상황은 이미 인도적인 재앙 수준을 넘어섰다. 주민들은 지난 30일 동안 난방은 물론 물조차 쓰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이첸코 시장은 이어 “모든 주민을 구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현지 상황은 위험한 수준이 아니라 사람이 살 수 없는 지경이다”라고 말했다.
마리우폴은 2014년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와 러시아를 연결하는 통로의 중간 지점이라는 전략적 위치 때문에 러시아의 공격이 집중되고 있는 도시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도시의 90% 정도가 파괴되고 적어도 5천명 이상이 사망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10만명 이상이 도시를 탈출한 것으로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우크라이나군에 도시를 떠날 것을 제안했지만 거부당했다며 마리우폴을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로부터 해방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렇듯 러시아가 마리우폴 점령 의지를 다시 한번 분명히 한 가운데 적십자 등의 민간인 대피 작업은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제적십자위원회는 주민 대피를 지원하기 위해 파견됐다가 인근 도시에서 억류됐던 지원팀이 4일 밤 석방됐다고 밝혔다. 적십자위원회는 “이번 사건은 마리우폴 주변에 안전한 통로를 확보하는 일이 얼마나 불안하고 복잡한 작업인지 보여준다”며 적십자는 마리우폴 주민의 인도주의적 대피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주민 대피 작업이 지연되는 것과 관련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서로 상대편을 탓하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지적했다.
700만명에 달한 우크라이나 국내의 피란민 상황도 날로 어려워지고 있다고 국제이주기구(IOM)가 밝혔다. 이주기구는 이날 발표한 2차 피란민 조사 보고서에서 우크라이나 국내 피란민이 지난 1일 현재 713만여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또, 413만명은 국외로 탈출했고 290만명은 피란을 적극 준비하고 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보고서는 2000여명의 주민을 설문조사한 결과, 피란민 가구의 57%는 가족 중에 60살 이상의 고령자가 있고 29%는 5살 이하 자녀들과 함께 피란에 나선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응답자의 30%는 가족 중에 만성 질환자가 있다고 답했다. 또, 전체의 34%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가구 소득이 전혀 없는 상태로 생활하고 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