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미국에서 공수된 대전차미사일을 옮기고 있다. 키이우/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방 완전 장악을 위한 본격 공세를 예고한 상황에서 미국이 헬리콥터와 장갑차를 포함한 추가 군사원조를 발표했다. 우크라이나 흑해 주요 도시로 요충지인 마리우폴은 러시아군에 함락 직전인 상황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3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통화한 직후 8억 달러(약 9797억원)어치 군사원조를 추가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러시아가 돈바스 지방에서 공격 강화를 준비하고 있다”며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방어 역량을 계속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이 밝힌 목록에 헬리콥터와 장갑차 등 대형 장비들이 포함된 게 눈길을 끈다. 미국은 탈레반이 승리하기 전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에 제공하려고 했던 옛소련제 헬리콥터 Mi-17 11대와 미군의 M113 장갑차 200대를 제공하고 곡사포도 지원하기로 했다. 대공미사일, 대전차미사일, ‘자살 드론’이라는 별명이 붙은 ‘스위치블레이드’ 무인기도 추가 공급한다. 생화학전과 핵전쟁 대비 장비도 공급하고, 우크라이나군에 대한 정보 제공도 확대하겠다고 했다. 존 커비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옛소련제 헬리콥터 Mi-17은 이미 5대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러시아의 침공 이후 미국의 군사원조 총액은 25억 달러로 늘게 된다. 미국 등은 전쟁 초기에는 개인 방어 장비나 탄약 등의 공급에 치중했다. 비싼 장비를 줘봤자 승패에 영향을 미치기 어렵고, 러시아군에 노획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쪽은 우크라이나군이 원조받은 무기로 러시아군에 효과적으로 맞서는 것을 보면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5억 유로(약 6672억원) 규모의 군사원조를 추가하겠다고 발표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3일 러시아군을 물리치려면 더 강력한 무기가 필요하다며 전투기, 대형 야포, 장갑차, 방공시스템 제공을 나토 쪽에 요구했다. 하지만 나토 쪽은 전투기 제공에는 계속 난색을 보이고 있다.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해 세르게이 럅코프 러시아 외교차관은 “우크라이나 영토 안에서 이뤄지는 미국과 나토의 무기 수송을 적법한 표적으로 간주하겠다”며 경고했다.
<비비시>(BBC) 방송 등은 러시아군이 돈바스 친러 반군 장악 지역과 2014년 강제병합한 크림반도를 연결하는 요충지인 흑해 도시 마리우폴을 점령하기 직전임을 보여주는 신호들이 최근 강해지고 있다고 13일 보도했다. 우크라이나군 방어 병력은 탄약 등 군수품이 고갈됐고, 해안가에 접한 고립된 지역 2곳으로 퇴각했다고 밝혔다고 방송은 전했다. 러시아는 13일 마리우폴을 방어하던 우크라이나 해병 1천여명이 항복했다고 발표했다. 현재 마리우폴에서 전투는 해안가의 아조우스탈 산업지역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다. 러시아가 이 지역까지 점령하면, 마리우폴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다. 러시아군이 마리우폴을 장악하면 상당수 병력을 돈바스 추가 점령을 위한 전선으로 재배치할 수 있게 된다. 마리우폴을 방어하는 우크라이나 36해병여단의 병사들은 자신들은 아직 항복하지 않고 있다는 메시지를 소셜미디어에 올리고 있지만, 포위됐으며 탄약과 식량 등의 보급이 끊겼다고 인정했다. 이들은 페이스북에 “마지막 전투…우리 중 일부는 죽고, 일부는 붙잡혔다”고 적었다.
한편, 러시아 국방부는 흑해함대의 기함 모스크바호에서 화재가 발생해 선체가 크게 파손되고 승조원들이 대피했다고 14일 밝혔다. 우크라이나군은 흑해함대의 상징인 이 미사일 순양함을 자신들이 공격했다고 밝혔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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