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민간인 1천여명이 머물고 있는 마리우폴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 25일(현지시각)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다. 마리우폴/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남서부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몰도바 내 친러시아 분리독립 세력의 정부 건물이 공격을 당했다. 이에 따라 자칫 우크라이나 동·서부 두쪽에서 갈등과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도 우려되고 있다.
몰도바 내 친러시아 분리주의 정권인 ‘트란스니스트리아’의 내무부는 25일(현지시각) 수도 티라스톨의 국가 보안부 건물이 로켓추진유탄으로 추정되는 무기로 공격을 당했다고 밝혔다. 내무부는 이 공격으로 숨진 사람은 없지만 건물 창문이 깨지고 내부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고 전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 등이 보도했다. 공격이 누구의 소행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날 공격은, 루스탐 민네카예프 러시아군 중부군관구 부사령관이 러시아군의 목표 중 하나는 우크라이나 남부를 장악해 트란스니스트리아에 접근할 통로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밝힌 지 사흘 만에 발생했다. 트란스니스트리아는 1990년 몰도바에서 분리·독립을 선언한 친러시아계가 세운 정권이며, 국제적으로는 국가로 승인받지 못하고 있다. 이 지역은 1992년 협정에 따라 러시아·몰도바·트란스니스트리아가 구성한 공동 조정위원회의 감독을 받고 있다. 러시아는 평화유지군 명목으로 이 지역에 군인 1500여명을 주둔시키고 있으며, 2만t 규모의 무기도 현지에 보유하고 있다고 <아에프페> 등이 전했다.
몰도바 외무부는 성명을 내어 “이 사건의 목표는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의 안보를 위협할 구실을 만들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전했다. 우크라이나쪽은 이날 사건이 러시아 정보기관의 공작일 가능성을 제기했다고 미국 <시엔엔>(CNN) 방송이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개한 성명에서 “분명히 이 사건은 공포를 유발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반감을 부추기기 위해 러시아연방보안국(FSB)이 꾸민 도발 행위 중 하나”라고 주장했다.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우크라이나 최대 항구 도시 오데사와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 있으며, 이 지역에서 긴장이 고조될 경우 오데사 등 우크라이나군이 지키고 있는 흑해 연안 서쪽 지역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서쪽으로 진군을 시도하며 이날도 루한스크주와 도네츠크주에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시엔엔>은 이날 전투로 루한스크주 서부의 작은 마을 노보토시키브카가 거의 파괴됐으며, 러시아군이 이 마을 서쪽으로 진군을 시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적군이 루한스크와 도네츠크를 완전히 장악해 크림반도로 통하는 육로를 유지하기 위한 공격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군이 최후 저항을 벌이고 있는 마리우폴의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는 이날도 민간인 탈출이 이뤄지지 못했다. 제철소에는 1천명 정도의 민간인이 머물고 있다. 러시아군은 이날 이들이 제철소를 빠져나갈 통로를 열겠다고 밝혔지만, 우크라이나는 두쪽의 합의로 통로를 열어야 한다며 유엔의 개입을 촉구했다. 이리나 베레시츄크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인도주의적 통로는 두쪽의 합의로 개설되어야 한다”며 유엔이 인도주의적 통로를 열고 안전을 보장할 것을 촉구했다.
러시아군은 이날 우크라이나 중부와 서부의 5개 기차역을 미사일로 공격했으며 이 때문에 철도 노동자 한명이 사망했다고 우크라이나 철도청이 밝혔다. 러시아군의 기차역 공격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열차를 통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다녀간 뒤 이뤄졌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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