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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브렉시트 2년…출구 안 보이는 북아일랜드 ‘통관 장벽’

등록 2022-05-31 05:00수정 2022-05-31 08:33

[북아일랜드 협약 거센 논란]

영국 본섬 사이 ‘경제 국경’
북아일랜드협정 따라 통관 절차 둬
식료품 등 물류 차질 빚기도
영국계 “통합 훼손 반발”

영국·아일랜드 ‘공존의 땅’에
아일랜드와 국경 통제 땐
유혈분쟁 끝 맺은 평화협정 위태
영국 본섬과 통관 관문 둘 수밖에
북아일랜드의 영국계 주민들이 28일(현지시각)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북아일랜드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진을 벌이고 있다. 벨파스트/AFP 연합뉴스
북아일랜드의 영국계 주민들이 28일(현지시각)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북아일랜드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진을 벌이고 있다. 벨파스트/AFP 연합뉴스

28일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에서 ‘북아일랜드 10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행진이 벌어졌다. 이 행사는 1921년 5월 아일랜드섬의 남부가 자치령인 ‘아일랜드 자유국’으로 분리될 당시 북부 일부가 ‘영국 연합왕국’의 일원으로 남은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지난해 코로나19 대유행 탓에 행사가 한해 연기됐다. 영국 <가디언>은 이 행사에 1만명 이상이 참여해 행진에 나섰고 북아일랜드 내의 영국계 정치세력을 이끄는 민주연합당(DUP) 정치인들도 대거 참여했다고 전했다.

행진을 주관한 단체인 ‘오렌지단’은 이날 오전 트위터를 통해 “중요한 날이 마침내 왔다! 북아일랜드 100년을 축하하는 이날이 모두에게 아주 즐거운 날이 되길 기원한다”고 썼다. 하지만 북아일랜드 내 영국계와 아일랜드계 사이의 갈등과 분열을 더욱 부각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고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 타임스>가 지적했다. 영국이 유럽연합(EU)을 공식 탈퇴(브렉시트)한 지 2년4개월이 지났지만, 그 이후 북아일랜드와 영국의 관계를 규정한 ‘북아일랜드 협약’을 둘러싼 논란이 날로 거세지는 탓이다.

북아일랜드 불안 촉발하는 협약 논란

민주연합당은 이 협약에 따라 영국 본섬과 북아일랜드 사이를 오가는 물자에 대한 ‘통관 절차’가 생기면서 영국의 단일성이 훼손됐다며 협약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민주연합당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북아일랜드 자치정부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자치정부는 영국계와 아일랜드계의 갈등 완화를 위해 이 두 세력이 함께 참여하는 공동정부의 형태를 갖추지 않으면 기능이 마비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게다가 아일랜드계 무장투쟁조직의 정치조직으로 출발한 정당인 ‘신페인’이 지난 5일 선거에서 사상 처음으로 북아일랜드에서 1당을 차지하며 정치적 긴장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신페인은 아일랜드 통일을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있다. 총리 후보가 된 미셸 오닐 신페인 부대표는 개표 직후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의 통일에 대한 ‘정직한 토론’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아일랜드 정계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영국 정부의 북아일랜드 협약 개정 요구도 강해지고 있다. 영국 정부는 브렉시트 협정이 유예기간을 거쳐 정식 이행된 지 1년6개월가량이 지나면서 북아일랜드 협약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리즈 트러스 영국 외교장관은 지난 17일 민주연합당이 협약에 반대하고 있다는 점을 거론하며 협약 개정이 무산될 때를 대비해 협약의 일부를 무효화하는 법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법안엔 영국 본토에서 북아일랜드로 이동하는 물품 가운데 현지에 머무는 물건에는 통관 절차를 간소화하거나 폐지하는 내용이 담길 전망이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이 법안이 협상 실패에 대비한 ‘보험’일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유럽연합(EU)은 전면 재협상을 거부하며 영국이 협약을 파기하면 무역 보복에 나설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사태가 간단치 않은 것은 영국·아일랜드·유럽연합이 모두 만족할 해법을 만드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와 아일랜드계 북아일랜드 주민을 만족시키려면 1998년 4월 ‘벨파스트 평화협정’을 통해 정착된 북아일랜드의 평화체제가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에 어떤 형태의 국경 통제도 없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영국과 영국계 북아일랜드 주민이 만족하려면 북아일랜드와 영국 본섬 사이의 통제도 없어야 한다.

하지만 영국이 브렉시트에 나서면서 두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게 불가능해졌다. 몇년 동안의 협상 끝에 영국이 주권의 일부를 포기하며 영국 본섬과 북아일랜드섬 사이 바다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경제 국경’을 세우기로 합의했다. 영국 내에 유럽연합에서 이탈한 본토와 여전히 남게 된 북아일랜드라는 두 개의 관세 지역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그러자 영국과 통합을 중시하는 영국계 주민들이 맹반발하기 시작했다. 영국 정부가 이들의 요구에 따라 유럽연합에 재협상을 요구하면서 이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법안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따라 도입된 통관 절차 탓에 북아일랜드에 대한 식품 공급이 한때 차질을 빚었다. 2021년 1월 벨파스트의 한 슈퍼마켓 채소 코너가 텅 비어 있다. 벨파스트/AP 연합뉴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따라 도입된 통관 절차 탓에 북아일랜드에 대한 식품 공급이 한때 차질을 빚었다. 2021년 1월 벨파스트의 한 슈퍼마켓 채소 코너가 텅 비어 있다. 벨파스트/AP 연합뉴스

영국·아일랜드 공존의 땅

영국의 일부분인 북아일랜드가 유럽연합 단일 시장에 남게 된 것은 이 지역의 역사적 특수성 때문이다. 영국이 16세기 아일랜드를 침공한 이후 많은 신교도 영국인들이 아일랜드섬으로 이주하면서 구교도인 아일랜드인들과 갈등을 빚어왔다. 1921년 남쪽의 26개 주가 ‘아일랜드 자유국’(1949년 아일랜드로 완전 독립)으로 떨어져 나간 뒤에도 북아일랜드는 영국계 주민과 아일랜드 주민이 공존하는 ‘영국 땅’으로 남았다.

하지만 그 뒤에도 아일랜드계 주민들은 아일랜드와의 통일을 포기하지 않으며 영국계와 갈등을 이어갔고, 이 갈등은 1970년대 이후 극심한 무력충돌로까지 번졌다. 이때부터 1998년까지 무력충돌로 사망한 사람만 3483명에 이르렀다.

이 오랜 갈등은 1998년 ‘벨파스트 평화협정’이 체결되며 해소됐다. 이 협정은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함으로써 아일랜드인의 문화·경제적 통일성 추구를 인정했다. 대신 아일랜드인들은 북아일랜드 주민 다수가 영국의 일원으로 남기를 바란다는 걸 인정했다. 또 북아일랜드 주민 전체에게는 영국과 아일랜드 이중 국적 또는 두 나라 중 하나의 국적을 선택할 권리가 주어졌다. 북아일랜드 자치정부도 영국계와 아일랜드계가 권력을 나누는 공동정부 체제로 구성됐다.

북아일랜드 문제는 주민의 결정에 따른다는 원칙에 따라 현 체제는 주민투표를 통해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주민들이 느끼는 정체성을 볼 때 그 가능성은 아주 낮다. 2011년 인구 총조사 결과를 보면, 북아일랜드 주민의 40%는 자신을 ‘영국인’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을 ‘아일랜드인’으로 여기는 이들은 25.3%, ‘북아일랜드인’으로 생각하는 이들은 20.9%였다. 나머지는 영국, 북아일랜드, 아일랜드 중 둘 또는 셋 모두에 속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런 복잡성은 주민들의 여권 소지 현황에서도 알 수 있다. 전체 주민 중 57.2%는 영국 여권만, 18.9%는 아일랜드 여권만 소지한 것으로 조사됐다. 두 나라 여권을 모두 갖고 있는 이는 1.7%였다. 북아일랜드는 서로 다른 ‘조국’을 바라보는 이들이 섞여 사는 땅일 수밖에 없는 셈이다.

2021년 4월 ‘북아일랜드 협약’에 반대하는 영국계 젊은이들이 주도한 폭력사태 저지에 나선 벨파스트 경찰들 앞에서 화염병이 불타고 있다. 벨파스트/EPA 연합뉴스
2021년 4월 ‘북아일랜드 협약’에 반대하는 영국계 젊은이들이 주도한 폭력사태 저지에 나선 벨파스트 경찰들 앞에서 화염병이 불타고 있다. 벨파스트/EPA 연합뉴스

불가능에 가까운 해법 찾기

영국은 2020년 1월31일 유럽연합을 공식 탈퇴했으나, 통관 절차 등 탈퇴 이후의 규정 변화는 유예기간을 거쳐 2021년 초부터 시행됐다. 유예기간을 뒀음에도 초기에는 영국 전역에 물류 차질이 빚어졌다. 특히 본토 사이에 경제 국경이 생겨난 북아일랜드는 심각한 식료품 공급 부족을 겪었다. 그 이후 물류 차질은 대부분 해소됐지만, 영국은 지난해 7월 유럽연합에 북아일랜드 협약 개정 협상을 요구했다. 양쪽은 지난해 10월부터 6개월 동안 협상을 진행했으나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물품 통관 절차와 관련해 영국은 북아일랜드에서 최종 소비되는 제품에 대한 통관 간소화를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유럽연합은 통관 서류를 50% 줄여주고 식품 검역을 80% 줄이는 안으로 맞서고 있다. 영국은 또 스코틀랜드산 씨감자의 북아일랜드 수출 금지를 푸는 등 생물 안전 관련 규정의 폐지를 주장하는 반면 유럽연합은 위험이 적은 식물에 대한 검역 간소화 방안을 제시했다. 또 영국은 북아일랜드 협약 관련 분쟁을 유럽사법재판소(ECJ) 대신 국제중재로 해결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연합은 북아일랜드는 유럽연합 법률이 적용되는 지역인 만큼 유럽사법재판소가 최종 결정권자가 되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파스칼 라미 전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은 최근 <가디언> 인터뷰에서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했으면 (북아일랜드와 사이에) 국경을 설치하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통관 절차를 완화하는 현실적인 방안은 영국이 유럽연합과 같은 표준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쪽의 표준이 동등하다면 유럽연합으로서도 통관 절차를 대폭 완화할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북아일랜드 협약 논란은 이제 영국이 ‘표준에 대한 주권’을 제쳐둘 수 있느냐 여부에 따라 타협으로 갈지, 무역 전쟁도 불사하는 장기적 전면 대립으로 갈지 결정될 전망이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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