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에 거의 점령된 우크라이나 루한스크주의 프리빌라 마을에서 13일(현지시각) 경찰이 주민들의 탈출을 돕고 있다. 프리빌라/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군에 포위돼 고립된 우크라이나 동부 세베로도네츠크에서 전투가 좀처럼 잦아들지 않는 가운데 14일(현지시각) 민간인 탈출을 위한 노력이 펼쳐졌다. 민간인 500명 가량이 대피하고 있는 도시 내 화학공장에서는 맹렬한 공격으로 주민들이 더는 견디기 힘든 상황에 직면했다.
올렉산드르 스트류크 세베로도네츠크 군정 책임자는 이날 도시에서 서쪽으로 빠져 나갈 수 있는 다리가 모두 끊어졌지만, 주민들의 탈출을 최대한 시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교전이 조금 잦아들거나 교통 수단이 확보되는 순간마다 탈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남아 있는 모든 가능성을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현재 도시 안에는 1만2천명 정도의 주민이 남아 있으나, 대규모 탈출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에이피>(AP) 통신이 보도했다. 전날 루한스크주 교전 지역에서 탈출한 민간인은 70명에 그쳤다.
민간인 500명 정도가 머물고 있는 아조트 화학공장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세르히 가이다이 루한스크주 주지사는 화학공장에 대한 러시아군의 공격이 너무 맹렬해서 “대피하고 있는 주민들이 더는 견디기 힘들어하고 있다. 그들은 심리적으로 벼랑 끝에 몰려 있다”고 전했다. 아조트 화학공장 상황은 수천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장기간 동안 고립된 채 공격을 당하면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던 동남부 마리우폴의 아조우스탈 제철소 사태와 점점 닮아가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 화학공장에서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 군인들에게 15일 오전부터 항복할 기회를 주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키이우는 군인들에게 무의미한 저항을 중단하고 공장에서 철수하도록 명령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러시아 국방부는 15일 오전 8시부터 12시간 동안 화학공장 내 민간인들이 빠져 나갈 수 있도록 통로를 열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방부는 민간인들이 러시아군이 통제하고 있는 스바토베 방향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방부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민간인을 도시 서쪽의 리시찬스크로 이동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쪽으로 통하는 다리를 통과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러시아군은 도시의 80% 정도를 장악한 채 시내 남쪽 등에서 맞서고 있는 우크라이나군을 밀어붙이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군인들은 외부와 차단된 채 고립될 위기에 처했다. 도시 방어를 돕고 있는 외국인 지원병 부대의 다미엔 메그로우 대변인은 “우크라이나 수비대 군인들이 나머지 부대와 차단될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영상 연설을 통해 자국군이 ‘뼈아픈 손실’을 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하지만 우리는 강하게 버텨야 한다. 적군의 손실이 커질수록 그들의 공격 강도가 약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자국 병사들이 매일 100~200명씩 숨지고, 몇백명이 부상을 당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로이터>가 전했다. 60~100명 수준이던 이달 초 하루 전사자 규모에서 2배 가량 늘어난 것이다. 러시아군의 피해 규모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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