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에 대한 러시아의 가스 공급이 최근 지난해의 3분의 1까지 줄면서 유럽의 에너지 위기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가스 분배 시설. 바움가르텐/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의 유럽에 대한 가스 공급이 지난해의 3분의 1까지 떨어진 가운데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회원국들에 비상 대책을 촉구하면서, 유럽이 러시아발 에너지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주목된다.
카드리 심손 유럽연합 에너지 담당 집행위원은 27일(현지시각) 룩셈부르크에서 열린 회원국 에너지 장관 회의 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가스 공급 차질 가능성을 알았지만, 이제는 정말 가능성 있는 사태로 보인다”며 가스 비축을 위한 비상 계획을 갱신하라고 촉구했다. 유럽은 지난해 전체 가스 수입량의 40%가량을 러시아에서 들여왔다.
회원국 정부를 대표하는 유럽연합 이사회도 이날 올 겨울 전까지 회원국의 지하 가스 저장고를 80%까지 채우도록 하는 규정을 채택했다고 <에이피>(AP) 통신 등이 보도했다. 현재 회원국 평균 비축량은 용량의 57% 수준이어서, 각국은 러시아산을 대체할 수입처를 시급히 확보해야 할 상황에 몰렸다.
러시아는 유럽연합이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제재 조처를 계속 내놓자 지난 4월 폴란드·불가리아에 대한 가스 공급을 중단한 것을 시작으로 가스 무기화를 꾸준히 강화해왔다. 현재까지 27개 회원국 가운데 러시아산 가스 공급 차단·제한 조처를 당한 나라는 독일·이탈리아를 비롯해 12개국에 이른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이에 따라 최근 유럽연합이 가스관을 통해 러시아에서 수입한 물량은 지난해의 3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다. 벨기에 싱크탱크 브뤼헐의 집계를 보면, 지난주 러시아산 가스 수입 물량은 10억9870만㎥로 지난해 같은 기간(30억7650만㎥)의 35%에 불과했다. 그나마 비축 물량은 572억3810만㎥로 지난해 같은 기간(448억9630만㎥)보다 123억㎥ 가량 많다. 하지만 지난해 겨울철의 최대 비축 물량(832억㎥ 수준)보다는 여전히 30% 정도 적은 규모다.
더 큰 문제는 회원국별 격차가 상당히 크다는 점이다. 포르투갈과 폴란드의 경우 저장 용량의 97~99%를 비축해두고 있지만, 불가리아(33%), 헝가리(38%), 루마니아(39%), 오스트리아(42%), 네덜란드(48%) 등은 절반도 확보하지 못했다. 경제 규모가 더 큰 이탈리아(55%), 프랑스(58%), 독일(58%)도 비축량이 절반을 조금 넘는다. 우크라이나의 경우는 저장 용량의 19%밖에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유럽연합은 노르웨이산 가스와 선박을 통한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주 이 두 가지 방법을 통해 확보한 물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9억㎥, 8억㎥ 가량 늘었다. 문제는 이런 수입 규모가 기존 최대 수입 물량을 훨씬 넘는다는 점이다. 겨울철 가스 수요 증가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가스관 관련 시설이나 액화천연가스 하역 설비 등에 대한 추가 투자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브뤼헬의 에너지 정책 전문가 시모네 타글리아피에트라는 <블룸버그>에 “가장 큰 위협 요인은 회원국들이 자국 에너지 시장을 닫는 시장의 파편화”라고 지적했다. 브뤼헬은 최근 내놓은 보고서에서 유럽연합이 러시아발 에너지 위기를 넘기 위해서는 가스 공동 구매·분배 등 에너지 시장 통합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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