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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러시아가 불붙인 ‘석유지정학’ 전쟁, 미 패권에 균열 낼까

등록 2022-07-30 15:22수정 2022-07-31 11:08

[한겨레S] 지정학의 풍경
우크라 전쟁과 페트로폴리틱스

서방 제재에 러 가스 무기화로 역공
러-인도 국제남북수송회랑도 현실화
이란 등 연안 국가와 교역 늘려가며
중-러 브릭스 세력과 서방 G7 대결
5월22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 시위에 참여한 한 시민이 ‘러시아 석유 및 가스 금수 조치'라고 쓴 팻말을 들고 있다. dpa 연합뉴스
5월22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 시위에 참여한 한 시민이 ‘러시아 석유 및 가스 금수 조치'라고 쓴 팻말을 들고 있다. d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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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정치학 혹은 석유지정학이라는 말이 있다. 영어로는 ‘페트로폴리틱스’라고 한다. 석유와 정치학을 합친 말이다. 석유로 대표되는 에너지, 더 나아가 자원과 관련된 국가 사이의 지정학이다.

1973년 이스라엘-아랍 사이의 4차 중동전쟁에서 아랍 산유국들이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서방 국가 등에 석유 금수를 발동하며 석유 무기화를 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미국이 달러화로만 결제되는 석유결제시스템으로 달러 패권을 지키는 것도 석유지정학의 핵심이다.

중·인도 등 러시아산 다량 수입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석유지정학이 격변하고 있다. 서방이 러시아에 고강도의 경제제재를 가하자, 러시아는 서방에 가스 무기화로 맞서고 있다. 전쟁의 승패는 장기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장보다는 에너지를 핵심으로 한 경제전쟁터에서 판가름날 공산이 크다.

이런 석유지정학의 전개에 따라 미국 패권이 주도하는 ‘규칙 기반 국제질서’가 유지될지, 아니면 중·러 주도의 새로운 블록이 생기는 다극화 질서로 갈 것인지 결정나게 됐다. 경제력이 우위인 서방이 러시아에 경제제재를 하고 있으나, 러시아가 유럽을 상대해 가스 무기화로 역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러시아와 중국은 이번 기회에 에너지를 지렛대로 하여 미국 패권 질서에 균열을 내고 자신들의 블록을 만들려 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 제다를 방문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난 지난 15일 브릭스(BRICS)국제포럼의 푸르니마 아난드 의장은 사우디와 이집트, 튀르키예가 “아주 곧” 브릭스에 가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방문의 최대 목적인 사우디의 석유 증산에 대한 확답을 받지 못했는데, 오히려 사우디는 중·러에 한발 걸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브릭스는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이 참가한 신흥국 모임으로 올해 6월 14년째 정상회의를 베이징에서 화상으로 했다. 브릭스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에 참가하지 않고, 오히려 러시아의 석유 등 에너지와 비료 등의 수입을 크게 늘렸다.

중·러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브릭스를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를 주도하는 서방 주요 국가들의 모임인 ‘G7’에 맞서는 모임으로 발전시킬 의향을 보이고 있다. 이번 정상회의에서는 인도네시아·타이·아랍에미리트연합 등 13개국이 중국의 초청으로 가입 신청을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22일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 앞선 포럼에서 미국 주도의 제재는 “높은 담을 가진 작은 마당”을 만들 뿐이라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브릭스 국가와 가입 대상국들 사이의 교역은 갑자기 늘었다. 서방이 러시아의 수출에 제재를 가하자, 브릭스 국가들이 러시아의 에너지 등 자원을 싼값에 수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는 러시아 원유를 올해 6월까지 지난해 전체 수입량의 5배 이상 수입했다. 중국은 독일을 제치고 러시아 원유의 최대 수입국이 됐다. 사우디도 올해 2분기 들어서 러시아 정제유 수입을 갑절로 늘렸다. 농산품 수출국인 브라질은 러시아 석유와 비료 의존도를 높이고, 디젤유도 가능한 한 최대로 구매하겠다고 밝혔다.

브릭스 회원국과 가입 대상국인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 ‘미들 파워’ 국가들은 연료·식량·비료라는 ‘3F’(fuel·food·fertilizer) 원자재로 교역 블록을 형성하는 중이다. 이들 브릭스 안팎의 원자재 교역은 이들 국가의 통화바스켓과 결제시스템 조성 환경을 구축 중이어서 미국 패권 질서의 핵심인 달러 체제에 균열을 낼 가능성을 제기한다.

러시아와 인도를 잇는 새로운 교역권과 교역로 개척도 시작됐다. 지난 20년 동안 몽상에 불과했던 이른바 ‘국제남북수송회랑’(INSTC)도 현실화되고 있다. 국제남북수송회랑은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유라시아 중앙과 이란을 거쳐서 인도로 연결되는 7200㎞ 철도·고속도로·해로 교역망이다. 러시아가 서방의 제재로 서쪽 교역이 봉쇄되는 상황에서 인도와 이란 등과의 교역이 늘자, 이 국제남북수송회랑 프로젝트가 시험가동되고 있다고 <알자지라>가 27일 보도했다.

지난 6월 이란은 러시아에서 출발해 호르무즈해협에 있는 자국 항구 반다르아바스를 거쳐서 인도로 가는 시험적인 첫 물류수송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합판을 실은 두 척의 컨테이너 화물선을 시작으로 7월까지 적어도 39척의 화물선이 러시아에서 아라비아해의 인도 나바셰바항으로 간다. 인도 국가안보위원회 사무국의 분석관이었던 바이샬리 바수는 <알자지라>에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며, 이런 추세라면 2030년께에는 국제남북수송회랑은 매해 2500만톤의 화물 수송 능력을 가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는 유라시아, 남아시아, 걸프지역 간 전체 화물량의 75%이다.

국제남북수송회랑이 개발되어 활성화되면 러시아~인도를 잇는 수송 시간은 기존의 40~60일에서 25~30일로 단축된다. 화물량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러시아에서 카스피해 주변, 이란을 거치는 육로와 철로 등도 개발되고 활성화된다.

대륙세력의 향방은 어찌될까

이는 단순히 교역 확대와 신속화를 넘어서 근대 이후 지정학의 최대 주제인 유라시아 심장지대와 환형지대의 결합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핼퍼드 매킨더 이후 니컬러스 스파이크먼, 즈비그뉴 브레진스키까지 서방의 지정학자들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어지는 서방 해양세력의 패권을 유지하려면 유라시아 내륙인 심장지대에 있는 대륙세력이 유라시아 주변 연안 지역인 환형지대로 진출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일관되게 지적했다. 즉, 중국과 러시아가 이란과 인도 등으로 진출해 결합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지금 중국과 러시아가 유라시아 연안 지역으로 진출해 새로운 블록을 만들어내느냐, 아니면 서방이 러시아를 고사시켜 그 싹을 잘라내느냐 하는 장기전으로 가고 있다. 서방과 러시아 사이의 에너지 전쟁과 석유지정학 전쟁은 그 과정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한겨레>에서 국제 분야의 글을 쓰고 있다. 신문에 글을 쓰는 도중에 <이슬람 전사의 탄생> <지정학의 포로들> 등의 책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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