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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페르시아 후예’ 이란, 다시 국제질서 한 축 될까

등록 2022-08-27 15:53수정 2022-08-27 15:57

[한겨레S] 지정학의 풍경
이란의 지정학(상)

이란 핵협정 운명 가를 협상서
유럽연합이 최종 절충안 제시
협정 복원 여부에 결정적 시기
‘미국 대 중·러’ 대결에도 변수
지난 25일 이란의 한 성직자가 이란 테헤란의 한 거리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있다. 이란은 지난 24일 미국과 핵협상과 관련해 유럽연합이 낸 절충안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EPA 연합뉴스
지난 25일 이란의 한 성직자가 이란 테헤란의 한 거리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있다. 이란은 지난 24일 미국과 핵협상과 관련해 유럽연합이 낸 절충안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EPA 연합뉴스

이란은 다시 서방과 공존하는 국제사회로 복귀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맞서는 중국·러시아 주도 블록의 주요한 일원으로 굳어질 것인가?

18개월을 끌어온 이란 핵협상이 다시 고비에 서면서,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요동치는 국제질서에 큰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행정부가 2018년에 일방적으로 파기했던 이란 핵협정인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을 복원하려는 협상에서 유럽연합이 최근 최종적인 절충안을 내고, 이란과 미국은 24일 이를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이란 핵협정 복원, 어디로?

앞서 유럽연합의 주제프 보렐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지난 8일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교착상태에 빠진 이란 핵협상 복원을 위한 마지막 절충안을 마련해 미-이란을 오가며 중재 외교를 펼쳤다. 이 과정에서 이란은 협상을 교착시켰던 이란혁명수비대(IRGC)에 대한 미국의 테러단체 지정을 해제하라는 요구를 철회했다. 이에 미국은 혁명수비대에 대한 테러단체 지정을 유지하되, 혁명수비대와 거래하는 외부 단체들은 제재하지 않겠다는 타협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내 3곳의 미확인 시설에 대한 국제 핵사찰 문제 등이 여전히 쟁점으로 남아 있다.

유럽연합의 이번 중재는 이란 핵협상의 운명을 가를 마지막 기회로 여겨지고 있다. 이란의 핵프로그램에 기본적으로 반대하는 이스라엘에서 야이르 라피드 총리가 중동을 불안하게 할 매해 1천억달러를 테헤란에 제공하는 “나쁜 타결안이 현재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고 강경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것으로 보아, 협상은 이제 결정적 기로에 선 것으로 보인다.

이란 핵협정의 복원 여부는 중동뿐만 아니라 유럽, 더 나아가 미국 대 중·러 대결에 큰 변수이다. 당장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로 가중되는 에너지난 해결에 이란의 석유와 가스가 절실하다. 트럼프가 이란 핵협정을 파기했을 때 유럽 각국은 이란에서 사업 기회를 날려버렸다. 이제는 사업이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를 걸고 이란 핵협정 복원에 나서야 하는 입장이다.

이란이 현재 국제질서에서 차지하는 입지를 이해하려면 우선 이란이 여전히 화약고인 중동 역내에서 인구·국토·경제·군사 모든 면에서 최강국임을 인식해야 한다. 세계에서 17번째인 168만4천㎢의 영토를 가지고 있다. 이는 프랑스·독일·스페인 등 서부 유럽 전역보다도 넓다. 접경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합친 면적보다 50%나 크다. 인구도 8560만여명이다. 중동에서는 1억명이 넘는 이집트 다음이다. 이슬람권에서 인구가 많다는 이라크와 아프간을 합친 인구보다도 14%가 많다. 이란은 세계 3위의 석유 매장량에다가, 4위의 석유 생산국이다. 정예 병력인 15만명의 혁명수비대에다가 35만명 이상의 정규군이 있다. 사거리 2천㎞인 샤하브-2 미사일 등 중단거리 미사일 능력은 중동에서 최대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하는 기술도 테스트했다. 물론 핵개발도 진행했다. 이 때문에 미국의 제재를 받다가, 2015년에 미국 등과 핵협정을 맺은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최초의 본격적 제국인 페르시아가 이란의 전신이라는 점에서 그 잠재력을 알 수 있다. 페르시아가 근대까지 제국으로 존속했던 배경은 그 지정학적 조건이다. 방어에 유리하고, 세력 확장에 우호적인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란은 산악으로 둘러싸여 있다. 아르메니아·튀르키예와의 북서쪽 접경에서부터 남서쪽으로 호르무즈해협 연안까지 1500㎞에 걸쳐 자그로스산맥이 뻗어 있다. 북쪽에서는 엘부르즈산맥이 아제르바이잔 접경에서부터 카스피해 연안을 거쳐서 투르크메니스탄을 지나, 아프간까지 이어진다. 아프간과 파키스탄의 동쪽 접경을 따라서는 고도가 낮은 산맥이 아라비아해까지 이어진다. 이 산맥들의 서쪽은 사막과 소금밭, 황무지이다.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한 페르시아족, 즉 이란족은 카스피해 연안에부터 페르시아만 연안까지, 사방으로 산악, 바다, 사막으로 둘러싸인 산악·고원 지대에 주로 거주하며 ‘산악의 전사’로 역사에 등장했다. 이들의 지역은 방어와 주변 저지대로의 확장에 유리했다. 특히 남서쪽의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유역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페르시아가 제국으로 일어서고 확장하는 데 토대였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나가는 남서 접경지역은 이란에는 유일하게 산악이 아닌 저지대이다. 페르시아만의 연안인 이 후제스탄 지역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하류로, 샤트알아랍 수로 등의 습지를 포함한다. 인류 문명이 발원한 ‘비옥한 초승달 지대’로 나아가는 통로이다. 이 때문에 이 지역은 페르시아와 아랍을 가르는 역사적 경계이자, 페르시아가 제국으로 팽창할 때 출구였다. 이 지역에서 다수 민족은 아랍족이나, 페르시아에 이 지역의 통제권은 제국의 사활을 가르는 급소였다. 특히, 근대 이후 이란에도 후제스탄은 석유 매장지로서 그 지정학적 가치를 더했다.

중동 패권 사활 걸린 곳

이란의 이슬람혁명 확산을 저지하려고 이라크가 총대를 멘 1980년대의 이란-이라크 전쟁의 전장도 후제스탄 지역이었다. 이라크가 2차대전 이후 가장 장기적인 국가 간 전쟁을 이란과 벌인 이유에는 이슬람혁명 전파 저지 외에 중동의 패권 다툼도 있었다. 당시 중동에서 막강한 군사력을 갖춘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가 혁명으로 혼란스럽던 이란을 침공해 후제스탄 지역을 장악하기만 하면 중동의 패권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역으로 이란에 후제스탄과 그 너머에 이라크가 자리 잡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국가의 생존뿐만 아니라 중동의 역내 패권에 사활적인 곳임을 말해준다. 특히, 이라크에선 이란의 이슬람 종파인 시아파가 다수 종파여서, 현재 이라크 시아파 정부에 미치는 이란의 영향력은 크다. 이 때문에 미국의 이라크 전쟁 이후 중동 분쟁의 지정학적 배경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할 수밖에 없는 이란, 이를 저지하려는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파 아랍 국가와 이스라엘의 대결이 근간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한겨레>에서 국제 분야의 글을 쓰고 있다. 신문에 글을 쓰는 도중에 <이슬람 전사의 탄생> <지정학의 포로들> 등의 책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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