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연말 폐쇄 예정이지만 내년 4월까지 예비 전력원으로 유지될 독일의 이자르2 원전 모습. 란트슈트/로이터 연합뉴스
유럽의 에너지 위기가 가중되는 가운데 독일이 예정대로 올해 연말 원자력 발전소 가동을 모두 중단하되, 마지막까지 가동하고 있던 원자로 3기 가운데 2기를 내년 4월 중순까지 ‘예비 전력원’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천연가스를 노골적으로 ‘무기화’하는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면서, 탈원전도 계속 추진하는 ‘두마리 토끼’를 잡는 안이다. 이런 절충안에도 ‘원전 유지’를 요구하는 의견도 많아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행동부 장관은 5일 올해 연말로 가동이 중단되는 원자로 3기 가운데 2기를 내년 4월 중순까지 예비 전력원으로 남겨둘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올 연말까지 탈원전을 달성한다는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며 두곳의 예비 원전은 새로 연료를 충전하지 않은 채 대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독일 정부는 원전을 멈출 경우 생기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지난 7월18일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었다.
하베크 장관은 전력망 운용 업체들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 겨울철 전력 공급에 일시적인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다만 “실제 위기가 발생할 여지는 거의 없다. 하지만 안정적 공급을 보장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올 1~3월 독일이 사용한 전체 에너지에서 원전의 비율은 6%에 그쳤다.
예비 전력원으로 남게 되는 원전은 독일 남부 지역의 이자르 원전 2호기, 네카어베스트하임 원전 2호기이다. 두 원전의 발전 용량은 1400㎿대로 비슷하며 각각 1988년 4월, 1989년 4월 가동을 시작했다. 북부 지역에 있는 엠슬란트 원전은 예정대로 올 연말 운영이 종료된다.
독일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탈원전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왔다. 하지만 지난 2월 말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가 가스와 석유를 무기화하고, 그에 따라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며 탈핵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지난 2일에는 러시아가 유럽에 대한 주요 가스 수출 통로인 노르트스트림1 가스관의 가동을 무기한 중단한다고 발표하면서 유럽의 가스 가격이 이날 20% 이상 폭등했다. 그에 따라 유럽의 많은 전력 회사들이 파산 위기에 몰리자, 핀란드와 스웨덴 정부는 긴급 자금 지원에 나섰다. 독일의 경우도 최대 가스 수입 업체인 유니퍼가 파산 위기에 몰리는 등 에너지 위기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다. 독일의 지난해 전력 생산량 가운데 가스 발전소의 비중은 15% 수준이다.
독일 정부의 이날 결정은 하베크 장관이 속한 녹색당의 탈원전 주장을 수용하면서도 에너지 위기 가능성에 대비한 절충안이다. 하지만 야당은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기독민주연합(CDU)의 의회 내 부대표인 슈테펜 빌거 의원은 “(유럽 가스 문제에) 연대가 필요한 시점에 우리는 에너지 생산에 기여해야 한다”며 원전 가동 중단을 비판했다. 올라프 숄츠 총리가 이끄는 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자유민주당에서도 원전 가동을 연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 나온다. 요하네스 포겔 자민당 부대표는 “이 문제는 기후 중립적으로 생산되는 전력을 1㎾까지도 유지해야 하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원전을 가동하지 않은 채 대기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원전 운영 기업인 에온(이온)은 “원전은 가동을 중단했다가 재개할 수 있도록 설계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원전 운영사인 엔베베(EnBW)는 원전을 대기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지 점검하기 전에 정부가 원전의 수명과 관련된 법적 보장 장치를 만들고 예비 전력원과 관련된 계획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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