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즈 트러스 신임 영국 총리가 6일(현지시각) 런던 총리 관저 앞에서 취임 이후 첫 연설을 하고 있다. 런던/신화 연합뉴스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6일(현지시각) 취임하며 외무·내무·재무장관 등 핵심 요직에 흑인 등 소수 인종과 여성을 발탁했다. 이로서 영국 사상 처음으로 핵심 요직에 백인 남성이 빠진 내각이 탄생하게 됐다.
트러스 총리는 이날 낮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만나 총리로 공식 임명된 뒤 외무장관에 제임스 클레버리(53), 내무장관에 수엘라 브레이버먼(42), 재무장관에 쿼지 콰텡(47)을 각각 임명했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콰텡과 브레이버먼은 트러스 총리의 대표 측근으로 꼽힌다.
영국의 첫 흑인 외무장관이 된 클레버리는 어머니가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출신이고, 아버지는 백인이다. 군 복무 경력이 있으며 외무부에서 중동·북아프리카, 유럽·북미 담당 차관을 지냈다. 또, 보리스 존슨 내각에서 직전까지 교육부 장관을 맡았었다.
브레이버먼 신임 내무장관은 1960년대에 케냐와 모리셔스에서 영국으로 온 부모를 둔 인도계 여성이다. 영국의 이민정책을 이끄는 내무장관은 인도 구자라트 혈통의 프리티 파텔에 이어 연속으로 소수 인종 출신이 맡게 됐다.
존슨 내각에서 산업부 장관을 지낸 콰텡은 영국의 첫 흑인 재무장관에 올랐다. 그의 부모는 1960년대에 가나에서 이주했다. 콰텡은 명문 사립 학교 이튼과 케임브리지 대학을 거쳐 금융 분야에서 일했다. 그의 전임자이자 당 대표 경선에 나서 트러스 총리와 막판까지 경합을 벌였던 리시 수낵 전 장관도 부모가 모두 인도계다.
이에 따라 총리 등 4대 핵심 요직에 백인 남성이 없는 최초의 영국 내각이 구성됐다. 영국 내각은 20여년 전까지 대부분이 백인 남성이었으며, 2002년 폴 보텡이 장관급인 재무부 수석 국무상에 오른 것이 첫 소수 인종 출신 장관이었다고 <로이터>가 전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수엘라 브레이버먼 내무장관, 제임스 클레버리 외무장관, 쿼지 콰텡 재무장관, 테리즈 코피 부총리 겸 보건복지부 장관. 런던/AFP 연합뉴스
영국 싱크탱크 ‘브리티시 퓨처’의 선더 카탈라 대표는 “이제 우리는 이런 다양성을 일상적인 것으로 취급하게 됐다. (다만) 변화의 속도는 이례적이다”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보수당 의원 가운데 여성은 3분의 1 정도이고 소수 인종 출신자는 전체의 6%에 그치는 등 여전히 백인 남성이 여당을 지배하고 있다.
트러스 총리의 첫 내각은 측근들을 요직에 집중 배치한 것도 눈에 띄는 특징이라고 <비비시>(BBC) 방송 등이 지적했다. 부총리 겸 보건복지부 장관을 맡게 된 테리즈 코피(51)도 콰텡이나 브레이버먼과 함께 트러스 총리의 핵심 측근으로 꼽히는 인사다.
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수낵 전 재무부 장관을 지지했던 도미닉 라브 법무부 장관은 내각에서 빠졌다. 존슨 전 총리의 열렬한 지지자인 나딘 도리스 문화부 장관은 연임을 제안받았으나 스스로 거절했다고 밝혔다. 기존 내각 가운데는 벤 월리스 국방장관만 같은 자리를 지켰다.
한편, 트러스 총리는 취임 직후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는 에너지 가격 문제에 적극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다우닝가 10번지 관저 앞에서 한 연설에서 “우리가 함께 폭풍우를 헤치고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경제를 재건하고 우리가 현대적이고 훌륭한 영국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트러스 총리는 또 대기업에 대한 법인세 증세 계획과 보건·복지 재원 확충을 위해 제안됐던 근로소득세 인상 계획을 취소하는 등 감세를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영국이 동맹국들과 함께 세계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계속 지킬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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