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러시아 군인이 자포리자 원전에서 근무를 서고 있다. 이 사진은 러시아 국방부가 촬영해 배포한 것이다. AP 연합뉴스
전쟁 중 계속된 포격으로 끔찍한 원전 참사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이어져 온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ZNPP)이 일단 가동을 멈췄다.
1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의 원전 운영사 에네르고아톰은 텔레그램 성명에서 “자포리자 원전이 완전히 멈춰 섰다”며 이날 오전 3시41분께 자포리자 원전에서 가동 중이던 마지막 원자로인 6호기의 전력망 연결을 차단했다고 밝혔다. 운영사는 이어 “6호기의 가동을 중단해 가장 안전한 상태인 ‘냉온 정지’(cold shutdown) 상태로 전환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냉온 정지 상태란 원자로 온도가 100도 미만으로 유지되는 안정 상태다. 이로써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쪽의 포격으로 끔찍한 원전 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이어졌던 자포리자 원전이 당분간 멈춰 섰고, 원자로가 폭발하는 것 같은 최악의 참사가 발생할 가능성도 크게 낮아졌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이날 성명에서 “지난 1일 이후 현장에 남아있는 국제원자력기구 전문가들은 발전소 고위 직원으로부터 원자로 6호기가 정지됐음을 통보 받았다”면서 “원전의 예비 전력선이 복구돼 원자로 냉각과 필수 안전에 필요한 외부 전기를 발전소에 제공할 수 있게 됐고, 오늘 아침 마지막 가동 중인 원자로를 폐쇄할 수 있게 했다”고 밝혔다.
앞서, 자포리자 원전에선 지난 7일 발생한 포격으로 우크라이나 국가 전력망과 연결돼 있던 예비 송전선이 끊겼다. 그로 인해 가동 중이던 6호기는 사흘 동안 안전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전력만 생산하는 ‘섬(island) 모드’ 상태였다. 이후 송전선이 복구되면서 원전은 외부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게 돼 이날 조처를 취할 수 있었다. 나머지 5개 원자로는 이미 정지 상태였다.
원전 가동이 중지되면 원자로 내의 열을 감당하지 못해 방사능 물질로 만들어진 연료가 녹아 내리는 노심용융(멜트다운) 등은 피할 수 있다. 하지만, 포격으로 인해 냉각 중인 사용후 핵연료 등이 파괴되면, 그 안에 있는 고준위 방사능 물질이 주변에 퍼지는 끔찍한 참사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지난 3월 초 러시아가 유럽 최대 원전인 우크라이나 남부 자포리자 원전을 점령한 뒤 주변에선 포격이 끊이지 않다. 이런 위험천만한 상황이 이어지는데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서로 상대방이 공격한 것이라며 주장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자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이 1일 13명의 사찰단을 이끌고 원전을 방문해 안전을 점검했다. 이들은 2일 원전에 사찰단 2명을 상주시겠다고 했고, 6일엔 원전 안전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해 주변에 ‘안전지대’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포격이 이어지면서 원전의 전력망 연결이 여러 차례 끊기고 연결되길 반복했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9일 성명에서 “원전 운영자와 가족들이 사는 에네르호다르시에 공급되는 전력시설이 파괴돼 수돗물, 하수도 등이 멈춘 상태여서 원전 주요 관계자와 주민들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있다”면서 “지속되는 포격으로 전력 인프라가 손상돼 자포리자 원전 전체는 디젤 발전기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이어, “원전에 안정적으로 전원이 다시 공급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마지막 남은 원자로 6호기를 가동 중단시키는 것을 고려 중”이라는 뜻을 밝혔었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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