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관이 12일(현지시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성 자일스 대성당 안으로 옮겨지고 있다. 에든버러/로이터 연합뉴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세상을 떠난 뒤 추모 열기로 뜨거운 영국에서 여왕의 서거를 계기로 군주제가 계속 유지돼야 하는지에 대한 반론도 재점화되고 있다.
12일(현지시각) <아에프페>(AFP) 통신에 따르면, 군주제에 반대하는 활동가 두 명이 이날 런던 웨스트민스터궁에 있는 영국 의회 앞에서 집회를 벌였다. 왕위에 오른 찰스 3세가 의원들 앞에서 첫 연설을 하던 중이었다. 두 활동가는 “(찰스3세는) 왕이 아니다”, “봉건주의를 끝내라”라고 쓰인 손팻말을 높이 치켜들고 “군주제를 폐지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위에 참석한 활동가 한 명은 통신에 “현대 사회에서 세습 권력이란 혐오감을 자아낸다”며 “찰스 3세가 (왕실) 가족으로 태어난 것만으로 정치 권력을 갖는 것은 도덕적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고 말했다.
시위대는 왕실에서 쓰는 세금에 대해 지적했다. 영국 정부가 지원하는 왕실 유지비는 2020~2021년 회계연도 기준 8600만 파운드(약 1381억원)라고 이들은 강조했다. 시위대는 의회가 제안한 법안이 왕실의 이익에 영향을 미칠 때마다 왕실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 의회 협약(king's consent)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다른 시위 참가자는 “법을 바꾸는 숨겨진 권력이 왕실에 있다”며 새 왕으로 즉위한 찰스 3세에 대해 “그는 동의 없는 왕이며 그의 즉위는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12일(현지시각)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홀리루드성에 도착한 영국 국왕 찰스 3세가 군인들의 호위하에 걷고 있다. 에딘버러/UPI 연합뉴스
비슷한 시위는 영국 곳곳에서 일어났다. 하루 전 11일 여왕의 관을 실은 운구차가 밸모럴성에서 에든버러 홀리루드 궁전으로 이동하던 중 시위대 두 명이 경찰에 연행됐다. 스코틀랜드 경찰은 성명을 통해 “왕족을 태운 운구차가 가던 길 인근에서 55살, 22살 두 명의 시위대가 공공질서를 위반해 체포됐다”고 밝혔다. 이날 옥스포드시에서는 한 중년 남성(45)이 “누가 그를 선출했느냐”며 대중들 앞에서 군주제 반대 발언을 한 뒤 경찰에 연행됐다고 <비비시>(BBC)가 보도했다. 이 남성은 방송에 “16세기에나 어울릴 법한 옷을 입고 서있는 왕족과 군대를 보고 슬프고 화가 났다”면서 “찰스 3세는 우리의 동의 없이 국가 수장 임무를 부여받았다”며 애통해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가디언>은 10일 여왕의 서거 이후 영국에서 군주제 종식에 대한 토론 열기가 뜨거워졌다고 밝혔다.
영국 시민단체 ‘리퍼블릭’은 여왕 서거를 계기로 군주제 폐지 여론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하며 여왕 서거 발표 직후 24시간 동안 단체의 소셜미디어 계정 팔로워가 2천명 늘고 신규 회원 가입도 크게 늘고 있다고 밝혔다. 그레이엄 스미스 리퍼블릭 대변인은 <가디언>에 “여왕의 서거는 왕정의 종말을 촉발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축하할 만한 이유”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오후 에든버러 성 자일즈 대성당에서는 여왕의 삶을 추억하는 추모 예배가 열렸다. 여왕의 주검이 담긴 관은 이날 24시간 대중에게 공개됐다. 대성당에 모여든 시민 수만명은 새 국왕 찰스 3세와 왕비 커밀라, 앤 공주, 앤드루 왕자 등 왕족들의 장례 행렬을 지켜봤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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