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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사우디, 미국 갔던 우리가 빚진 것…미등록 이주민 40만 시대

등록 2022-09-18 08:00수정 2022-09-18 13:45

[한겨레S] 홍명교의 이상동몽ㅣ동아시아의 이주노동자들

국경 없는 노동자 무한경쟁 시대
이주자를 ‘3등 시민’ 만들며 착취
이들에 오히려 빚진 건 아닐까
이주민센터, 혐오 막는 보루 구실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이주노동자 행동의 날’ 집회에서 이주노동자와 시민단체 회원들이 노동허가제 실시 등을 요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이주노동자 행동의 날’ 집회에서 이주노동자와 시민단체 회원들이 노동허가제 실시 등을 요구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자본주의와 식민주의가 착종된 근대 동아시아에서 노동자들의 저항은 디아스포라들에 의해 시작돼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중국에서 일어난 첫 대규모 파업은 1922년 홍콩항 선원 파업이었다. 헐벗은 농촌에서 먹고살기 위해 이주해 온 한족 노동자들은 일상적 차별과 학대에 맞서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몇달 만에 조합원은 3만여명으로 늘어나 13일에 걸친 파업으로 폭발했다. 대륙에선 빈곤에서 벗어나고자 수백만명이 영국 치하의 식민도시 홍콩으로 이주했는데, 부유한 백인 가정은 대륙 출신의 어린 여성들을 ‘식모’ 삼아 부렸다. 이들의 노동은 이곳 ‘디아스포라의 섬’이 수십년 뒤 첨단 도시로 전변할 토대가 됐다.

아시아에서 본격적인 노동이주는 1970년대 중반에 시작됐다. 걸프만 건설 경기가 활성화되면서 동아시아 각국은 자국의 잉여 노동인구를 방출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났다는 아버지에 얽힌 흔한 서사는 1973년부터 붐을 이룬 중동행 노동이주를 일컫는다. 전후 식민지에서 벗어난 나라들은 이전과 다른 조건 속에서 경제성장을 도모해야 했고, 한국과 대만 등 신흥 산업국가들은 자본 부족과 노동력 과잉을 해결하기 위해 노동력 송출을 택했다. 이를 통해 국내 실업을 해소하고, 외화벌이로 달러를 보충했던 것이다.

노동자들의 국경 없는 무한경쟁

베트남전쟁과 인플레이션의 영향으로 기존의 국제통화체제가 붕괴되고, 서구 선진국과 중동 산유국의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자, 이주노동의 양상도 바뀌었다. 버블 경제 폭발을 앞두고 있던 일본과 한국·대만·싱가포르·홍콩 등 신흥공업국은 노동집약 제조공장을 주변국으로 옮겼다. 동시에 자국 내 3디(D) 업종이나 저임금 서비스업에 필요한 노동력을 동아시아 안에서 조달하기 시작했다. 저임금·저개발 국가에서 점차 많은 노동자들이 동북아시아로 이주해 왔다. 우리나라는 1993년까지 매우 미미한 수준에 머물렀던 이주가 그해 11월 산업연수제도 도입과 함께 늘기 시작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1998년엔 등록·미등록 체류 외국인이 40만명을 넘었고, 2008년 약 136만명, 코로나 직전인 2019년에는 291만5천명이 체류했다. 이는 한국 인구의 5.62%에 해당한다.

지구화는 상품·자본·기술의 국제거래 자유화를 동반했고, 국경을 가로지르는 노동의 이동성을 증대했다. 서구에선 외국인 저임금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고, 이주노동에 대한 규제가 강화됐다. 호황을 구가하던 일본·한국·대만에선 저임금 노동력 수요가 크게 늘었다. 농촌 몰락과 산업 침체로 주변부 국가에서 오는 노동이주가 확대되고, 자연스레 ‘바닥을 향한 경주’도 강화됐다. 결국 저임금 노동력의 이동 방향이 변화했고, 노동력 수입국에서는 규제 강화에 따른 불법체류와 불법취업이 증가했다. 이주를 둘러싼 각종 중개업체의 개입과 송출 비리도 심화됐다.

자본가들은 저렴한 인력을 찾아 개발도상국에 공장을 지었고, 아시아의 노동력 이동은 두드러지게 증가했다. 자본에겐 국경을 허물어주었고, 노동자에겐 무한경쟁을 선사했다.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세계 이주민 수는 2억8100만명으로, 세계 인구의 약 3.5%를 차지한다. 2003년 추계에서 2050년 이주민 수가 약 2억3천만명일 것이라 예상됐지만, 2017년 이미 예상 수치를 초과했다. 동아시아 이주민이 가파르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동아시아의 이주는 자본의 세계화와 동떨어져 있지 않으면서도, 타지역과 차이를 보인다.

우선, 동아시아 안에서 이주하는 비중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유엔 경제사회국의 2019년도 이주 관련 통계에 따르면, 동아시아 내에서 이주는 역내 송출-유입 비중이 78.3%로 가장 크다. 절반 남짓인 아메리카나 유럽보다 훨씬 높은 비율이다. 둘째, 노동력을 송출하는 국가보다 수용하는 국가의 경제 상황에 따라 추이가 변화한다. 가령 유입국 경기 침체로 소비가 줄고 재고가 쌓이면 생산 감소와 구조조정으로 이어지는데, 이런 피해는 이주노동자가 가장 먼저 받는다. 셋째, 반드시 빈국에서 부국으로 이주하진 않는다. 중국의 비대칭적 위상이나 식민 침략·피지배·반식민이라는 상이한 경험 차 때문에 이주노동은 복잡한 양상을 띤다. 중국의 노동이주는 활발하지만 내륙 농촌 출신의 농민공들이 동부 연안도시로 이주하는 국내 이주에 국한된다. 농민공에 대한 차별과 착취는 중국 시장경제의 안전판 구실을 해왔다. 넷째, 동아시아 노동이주는 대체로 경제·기술 수준이 낮은 국가에서 높은 국가(한국·일본·대만·홍콩·싱가포르)로 이뤄지며, 내국인들이 꺼리는 저기능 노동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여성 비율이 증가한다는 점에서 ‘이주의 여성화’가 이뤄지고 있다. 경제 수준이 높은 수용국에서 맞벌이가 보편화되면서 돌봄노동의 빈자리를 개발도상국 출신 여성들이 메우는 것이다.

미등록 이주민의 수도 증가세다. 말레이시아엔 200만~400만명의 미등록 이주민이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대부분 빈곤과 학살, 전쟁을 피해 인도네시아와 미얀마에서 왔다. 국내에서도 과거 산업연수생 제도는 2002년 기준 30만명의 미등록 이주자를 낳았다. 이후 강제추방과 제도 변경, 양성화 조처로 16만~20만명으로 줄였으나, 최근 40만명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다시 올랐다.

이주민 보호와 우리 안의 민주주의

기성 정치인들이나 보수언론처럼 ‘불법’ 처지에 내몰린 이주민들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것에 몰두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문제는 이주민들을 ‘불법’으로 내모는 시스템에 있다. 미등록 이주민들도 바이러스 방역 등 사회적 보호망에서 멀어지고, 임금 체불에도 항의할 수 없는 미등록 신분으로 내몰리는 것은 원치 않는다. 사업장 이동의 자유조차 없는 고용허가제 아래 엄격한 단속 따위는 대안이 될 수 없다. 한국인이 미국이나 유럽에 가서 끔찍한 인종차별과 착취를 겪는 일에 분노한다면, 그에 모자라지 않는 우리 안의 차별을 직시해야 한다.

자본은 이주노동자들을 착취해 저렴한 비용으로 이윤을 증식해왔고, 국가는 이주민을 3등급 시민으로 만들어 위기를 전가해왔다. 정치·경제 위기로 우리 안에서 인종주의가 심화될 때, ‘싸우는 이주민’의 존재는 ‘우리’라는 익숙한 경계를 허물고, 민주주의나 인권, 차별과 배제에 대해 질문한다. 한국에서 극우 포퓰리즘이 이주민 혐오를 부추기며 발호하리란 우려가 점증하는 상황에서, 이주민 운동은 어쩌면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를 지킬 보루다. 그러하기에 이주노동자노동조합, 옥천군결혼이주여성협의회, 행동하는미얀마청년연대, 각 지역 이주민센터들은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에 활력을 불어넣는 당사자들이다. 한국 사회는 이주민에게 호혜를 베푼 게 아니라, 오히려 빚을 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동아시아 연구활동가. 플랫폼C 활동가. 동아시아 이야기를 씁니다. 각 사회의 차이를 이해하고, 같은 꿈을 지향하자(異牀同夢)는 의미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상을 품은 동아시아의 꿈(理想東夢)이라는 뜻도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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