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이란 수도 테헤란 거리에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쓰지 않은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숨을 거둔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사망했다고 보도한 신문이 펼쳐져 있다. AFP 연합뉴스
20대 이란 여성이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구금된 뒤 숨진 사건이 발생해, 이란에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위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국제 사회도 이란 당국을 비판하고 있다.
19일(현지시각) <로이터> 통신 등 외신은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이 사건과 관련해 여성 인권 탄압을 항의하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위는 지난 13일 가족과 함께 테헤란의 친척집을 방문한 22살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란 경찰에 의해 구금된 뒤 사흘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16일 병원에서 사망한 사실이 알려진 뒤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미니가 사망한 이튿날인 17일 그의 고향인 이란 북서부 쿠르디스탄주 사케즈에서 처음 일어났으며 현재 수도 테헤란을 포함해 이란 여러 도시들로 퍼지고 있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시위 영상을 보면, 시위대는 히잡을 벗어 흔들거나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향해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 외쳤다. 테헤란 대학에서도 학생 수십 명이 시위에 나서 “쿠르디스탄에서부터 테헤란까지 이란이 피를 흘리고 있다”고 외쳤다. 일부 학생은 “여성, 생명, 자유”, “나는 죽고 싶지 않다” 등의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행진했다.
이란의 반국영 <파르스> 통신에 따르면, 민심이 격화되자 19일 이란 경찰은 브리핑을 통해 “아미니의 죽음은 ‘불운한’ 사건이며, 우리는 이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밝혔다. 유족은 아미니가 경찰차에 실려 구치소로 끌려가던 중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조사과정에서 폭력을 쓴 적이 없고 심장마비로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해명했다. 이란 매체가 공개한 폐회로티브이(CCTV) 영상에는 아미니가 자신의 복장에 대한 ‘안내’를 받기 위해 경찰에 연행된 뒤, ‘재교육 센터’에서 쓰러지는 모습이 담겨 있다.
국제 사회도 이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란의 인권을 감시하는 노르웨이 등록 인권단체 ‘헹가우’는 쿠르디스탄주 도시 사난다지에서 지난 18일 경찰 진압으로 시위대 최소 38명이 부상 당하고 2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이란과 핵 합의 복원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미국도 재빠르게 반응했다. 로버트 맬리 이란 주재 미국 특사는 트위터에서 “기본권을 행사한 여성에 대한 부적절한 폭력을 중단하라. 그의 죽음에 책임있는 사람들은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19일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경찰에 체포된 후 사망한 여성 마흐사 아미니를 애도하는 시위가 발생했다. 한 시위대가 팔을 들어 승리 표시를 하고 있다. 대중의 분노는 지난 9월13일 수도를 방문한 마흐사 아미니(22)가 이란 경찰에 의해 체포된 후 3일간 혼수상태로 있다 병원에서 사망했다고 당국이 16일 발표한 이후 더욱 커졌다.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도 19일 <로이터> 통신에 “인권에 대한 끔찍하고 지독한 모독”이라며 “이란이 이 사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미국 상무부는 러시아에 수출통제 물품을 실었다며 이란 3개 항공사의 항공기 183대를 수출통제 위반 목록에 올렸다. 미국 정부가 이란 국내에서 일어난 특정 사건에 대해 직접 비판을 한 것은 이란 핵 합의 복원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나왔다.
한편, 이에 대해 나세르 카나니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란 내부 문제와 관련된 미국의 어떠한 개입 발언도 단호히 거부한다. 미국 정부가 이란에 대해 우려한다면 이란에 대한 수십 년간의 잔인하고 일방적이며 불법적인 봉쇄를 해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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