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이란 여성이 2022년 9월26일(현지시각)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이란 영사관 앞에서 잘린 머리카락을 들어보이며 시위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란에서 여성이 히잡을 바르게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됐다가 의문사한 사건을 계기로 번지고 있는 히잡 반대 시위가 열흘째 이어지며 이란 당국의 시위 진압은 점점 거세지고 있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당국이 시위대에게 총을 발포하고 있다”며 국제사회의 연대를 촉구했다.
26일 <아에프페>(AFP) 통신에 따르면 노르웨이 오슬로에 본부를 둔 이란인권단체(IHR)는 이란 당국의 시위 강경 진압으로 이날까지 총 76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전날 집계인 57명에서 하루 사이 20명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마흐무드 아미리 모그하드담 이란인권단체 소장은 “우리는 국제사회가 단결하고 또 단결해 이란 당국이 시위대를 죽이고 고문하는 것을 막기 위한 실질적인 조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이 단체는 입수한 시위 참여자의 사망 진단서를 근거로 “실탄이 시위대를 향해 직접 발사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공개한 영상에는 이란 북서부 타브리즈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위에서 이란 보안군이 건물 위에서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를 던지는 모습과 이란 경찰들이 거리에서 시위대를 곤봉으로 때리는 모습이 담겼다. 앞서 지난 13일 22살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테헤란에서 복장 규정 위반으로 경찰에 체포된 뒤 혼수 상태에 빠졌다가 16일 병원에서 숨진 뒤, 17일부터 이란 전역과 세계 곳곳에서 항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이란 당국은 25일 이란 공영 방송을 통해 시위 사망자수가 41명이라 밝힌 이후 사망자 숫자를 밝히지 않고 있지만, 인권단체에서 주장하는 사망자 수는 당국 발표와 비교해 볼 때 거의 두 배에 이른다. 이란 당국이 밝힌 체포자 수는 길란주 700명, 마잔다란주 450명 등 1200여명에 이른다. 미국 비정부기구(NGO)인 ‘언론인보호위원회’는 체포된 이들 중 언론인도 20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국제앰네스티도 “이번 시위에서 최소 4명의 어린이가 사망했다”며 “시위대에 대한 의도적이고 불법적인 실탄 발사가 이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헤바 모레이프 국제앰네스티 중동북아프리카 국장은 이날 <가디언>에 “사망자 수 증가는 인터넷 접속이 차단된 이란의 어둠 속에서 당국의 인명 공격이 얼마나 무자비했는지 보여주는 놀라운 증거”라고 말했다. 국제앰네스티는 시위 참여자인 22살 여성 하디스 나자피가 지난 21일 이란 서부 카라지에서 이란 당국의 진압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다.
이란 당국은 강경한 대응을 계속하고 있다. 골람호세인 모흐세니 에제이 이란 사법부장은 인터넷에 게시된 영상에서 “시위 선동자들에게 관용 없는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테헤란 경찰들은 24시간 내내 배치됐고 많은 이들이 잠을 자지 못했다”며 경찰에 감사를 표했다. 이날 테헤란 북부 마잔다란 검찰은 이번 시위로 약 450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모하마드 카리미 마잔다란 검찰총장은 이란 국영 통신 <이르나>(IRNA)와의 인터뷰에서 “‘폭동자’들이 정부 건물을 공격하고 공공 기물을 파손했다. 외국 반혁명 요원들이 이들을 조종했다”고 말했다. 앞서, 24일 인근 길란주에서도 길란주지사는 “우리 주에서 700명 이상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이란 정부는 25일 자국의 영국 대사를 불러 런던에 있는 페르시아어 매체가 이번 시위 참여를 독려했다고 항의했다.
26일(현지시각) 시리아의 쿠르드족 밀집지역 콰미실에서 열린 히잡 반대 시위에서 한 여성이 머리를 자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23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항의 집회에서, 이란 도덕경찰에게 체포된 뒤 사망한 마흐사 아미니의 사진 앞 바구니에 항의의 뜻으로 자른 머리카락이 담겨 있다.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은 이란을 비롯해 세계 여러 곳에서 시위를 촉발시켰다. EPA 연합뉴스
26일 시리아의 쿠르드족 밀집지역 콰미실에서 열린 히잡 반대 시위에서 한 여성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25일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타운홀에서 열린 히잡 반대 시위에서 한 시위 참여자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고 있다. EPA 연합뉴스
하지만, 이란의 주요 도시는 물론 전 세계 여러나라에서 히잡 반대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이란 당국이 광범위한 인터넷 규제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소셜미디어에서 시위 영상이 널리 공유되고 있다. 이란 테헤란 대학과 알자흐라 대학 등 이란 주요 대학 학생들은 수업을 거부하며 파업에 돌입했고, 교수들에게 동참을 촉구했다.
국제 사회는 이란 당국에 경고하고 있다. 조셉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정책 고위대표는 25일 “이란 당국이 비폭력 시위를 하는 이들에게 광범위하게 불균형적으로 무력을 사용했다”고 비난했다. 그는 “유럽연합이 아미니의 사망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선택권을 계속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26일 오타와에서 기자들에게 “오늘 우리는 이란의 이른바 도덕 경찰을 포함해 수십명의 개인과 단체에 제재를 가할 것임을 발표한다”고 말했다.
시위 도중 사망한 젊은이의 부모들은 국제기구가 더 많은 역할을 해주길 기대했다. 시위 도중 사망한 21살 청년의 한 아버지는 26일 <가디언>에 “나도 이란 당국을 비난할 수 있고, 전 세계가 그들을 비난할 수 있지만, 이 비난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유엔이 우리와 시위대를 옹호해주길 많은 이들이 기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26일 이란의 히잡 반대시위에 연대하는 지지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 EPA 연합뉴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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