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긴급총회에서 러시아의 불법 영토 병합을 규탄하는 결의안이 찬성 143표로 가결됐다. AP 연합뉴스
유엔 긴급특별총회에서 러시아의 불법 영토 병합을 규탄하는 결의안이 193개 회원국 중 찬성 143표로 가결됐다. 지난달 30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남부 4개 주를 병합한다고 선언한 지 보름 만이다.
12일(현지시각) 유엔 회원국들은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긴급 특별총회를 열어 러시아의 영토 병합 선언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번 결의안은 193개국 중 찬성 143표, 반대 5표, 기권 35표로 가결됐다. 지난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통과된 네건의 대러시아 결의안 중 가장 많은 찬성표를 얻었다.
이 결의안에서 회원국들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루한스크주, 남부 헤르손주·자포리자주 등 4개 지역에서 실시한 주민투표를 국제법상 효력 없는 ‘불법 행위’로 규정하고, 모든 국제기구들에게 러시아가 발표한 영토 병합을 어떠한 경우도 인정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에겐 병합 결정을 즉각, 무조건 번복할 것과 우크라이나 영토로부터 군 병력을 즉각 철수할 것을 촉구했다. 앞서 러시아는 지난달 23~27일 이번 침공으로 점령한 지역에서 병합에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해, 그 결과를 명분 삼아 30일 모스크바에서 우크라이나 4개 지역을 러시아 연방에 정식으로 편입하는 조약을 체결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4개 지역이 새로 러시아의 일부가 됐다. 이 지역 주민들은 영원히 우리 시민”이라고 선언했다.
유럽연합이 제안한 이번 결의안에 공동 제안국으로 참여한 한국은 찬성표를 던졌다. 반대 5표는 러시아·북한·벨라루스·니카라과·시리아에서 나왔다. 관심을 모은 중국·인도·파키스탄 등은 기권했다. 지난 3월 러시아 규탄 결의안에 기권했던 방글라데시·이라크·세네갈은 이번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유엔 회원국 전체 중 약 4분의 3개국이 찬성해 압도적 지지를 받은 이번 결의안은 크림대교 폭발 사고 이후 10일부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에 보복성으로 퍼부은 무차별 미사일 공격에 대한 반대 의사를 국제 사회가 강력히 밝힌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143개국의 역사적 지지에 깊은 감사를 표한다. 러시아의 병합 시도는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러시아의 점령지 병합을 위한 주민투표를 규탄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려 했으나,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며 통과되지 못했다. 하지만 유엔총회에선 이날 표결 결과에서 확인할 수 있듯 회원국들의 압도적인 찬성을 얻었다. 유엔총회 결의는 안보리 결의와 달리 법적 구속력이 없지만 국제사회 다수의 의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러시아에 대한 압박 수단이 될 수 있다. 바실리 네벤자 러시아 유엔 대사는 통과된 이번 결의안에 즉각 “정치적이며 선동적이다. 위기에 대한 외교적 해결을 위한 모든 노력을 파괴할 수 있다”고 반발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엔 총회에선 그동안 세번의 대 러시아 결의안이 통과됐다. 회원국들은 침공 직후인 지난 3월2일 러시아의 즉각 철군을 요구한 결의안을 141개국 찬성으로 통과시켰고, 3월24일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인도적 위기를 초래한 책임을 명시한 결의안을 140개국 찬성으로 가결했다. 러시아를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퇴출하는 4월7일 결의안엔 93개국이 찬성했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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