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새 총리가 내각 신임안 투표가 진행되기 전 하원에서 취임 후 첫 국정 연설을 하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조르자 멜로니(45) 신임 이탈리아 총리가 국정 방침을 밝히는 첫 연설에서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극우에 뿌리를 둔 멜로니 총리의 등장으로 이탈리아가 러시아에 맞선 ‘유럽의 연대’에서 이탈할 것이란 우려가 있었지만, 이를 잠재운 것이다.
멜로니 총리는 25일 이탈리아 하원에서 새 내각 신임안에 대해 표결을 하기 앞서 진행한 70여분에 이르는 연설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에너지 협박에 굴복하는 것은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이는 더 많은 요구와 협박으로 이어지는 길을 터주며 사태를 악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이탈리아는 유럽과 서방세계의 일부”라며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독일과 프랑스의 뒤를 잇는 유럽연합(EU)의 3대 축인 이탈리아가 정권 교체 뒤에도 유럽의 대오 안에 남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멜로니 내각의 신임안은 하원에서 찬성 235표, 반대 154표, 기권 5표로 통과됐다. 26일에 상원 투표를 한다.
멜로니 총리는 앞선 선거 운동 기간에도 마리오 드라기 전임 내각의 방침을 이어받아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원하겠다고 공약했다. 23일에도 재무부와 외교부 등 핵심 각료에 친유럽연합 성향의 인물을 배치했다. 연정에 참여한 ‘전진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대표와 ‘동맹’의 마테오 살비니 대표가 친러시아 성향이라 노선이 바뀔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그런 우려를 털어낸 셈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24일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와 한 인터뷰에서 멜로니 총리와 전화 회담을 했다며 그를 키이우에 초대했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전임 드라기 총리 시절부터 시작된 좋은 관계를 이어나가자 요청했고, 멜로니 총리는 자신의 의지 또한 분명히 그렇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이탈리아 형제들’(FdI)은 파시즘의 창시자라 불리는 베니토 무솔리니의 세력에 뿌리를 둔 정당이다. 멜로니 총리는 이 부분에서도 분명한 선을 그었다. 그는 “난 파시즘을 포함해 반민주적인 정권에 대해 한 번도 동정이나 친밀감을 느낀 적이 없다”며 “1938년 유대인 집단을 박해한 인종법은 이탈리아가 역사상 가장 수준이 낮아진 순간이었다. 우리 국민을 영원히 얼룩지게 만든 수치”라고도 말했다. 자신의 집권으로 이탈리아의 시민권이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선 “이탈리아 국민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것”이라고 되받아쳤다.
가장 큰 현안인 경제와 에너지 문제에 대해서도 무난한 입장을 밝혔다. 내년 이후 최악의 경기 침체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우린 폭풍의 한가운데에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힘든 시기가 될 것”이라며 “최우선 과제는 에너지 위기에 처한 기업과 가계를 돕고 새 에너지원을 찾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탈리아는 가스 소비량의 약 45%를 러시아에 의존했는데, 최근엔 이를 약 10%까지 낮췄다.
유럽연합(EU)에 대해선 유로존(유로화를 통화로 채택한 유럽 국가)의 3대 대국으로 협력하겠지만, 개혁도 요구할 것이라며 비판의 날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유럽연합은 각국에 맡길 많은 일에 관여하는데, 중대한 전략적 문제엔 빠져 있다”며 “이탈리아는 창립 멤버로서 내부에서 목소리를 크게 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에너지 위기에 대한 일부 정책 대응이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고, 유럽중앙은행(ECB)의 금리 인상도 성급했다는 견해를 밝혔다.
난민 문제에 대해선 예상대로 엄격한 입장을 드러냈다. 그는 “누구도 이탈리아에 불법으로 들어와서는 안 된다. 이민자 유입을 막기 위해 아프리카 정부와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