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이 26일(현지시각) 파리를 방문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파리/AFP 연합뉴스
유럽연합(EU)의 에너지 위기 대응 방안 등에서 갈등을 빚어온 프랑스와 독일의 정상이 26일(현지시각) 만나 이견 해소를 시도했으나 뚜렷한 결과를 내놓지는 못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이날 파리 엘리제궁에서 업무를 겸한 점심을 함께 하면서 유럽연합 에너지 대응책 등을 논의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 등이 보도했다. 이날 만남은 지난주 마크롱 대통령이 이날로 예정됐던 두나라 합동 각료 회의를 연기한 이후 서둘러 마련됐다. 두 정상의 만남은 예정보다 한 시간 이상 긴 3시간여 동안 진행됐으며 보좌관이 빠진 채 두 사람만 대화하기도 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두 정상은 회담에 앞서 환하게 웃으며 악수하는 등 친밀감을 보이려 애썼지만, 회담 결과에 대한 공동 성명을 내놓지는 않았다. 숄츠 총리는 회담 뒤 트위터를 통해 “오늘 유럽의 에너지 정책, 공통의 군사 프로젝트 등에 대해 아주 훌륭하고 중요한 대화를 나눴다”며 “독일와 프랑스는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함께 도전에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프랑스 대통령실은 “긴밀한 중장기적 협력 정신” 아래서 대화가 이뤄졌다고 전했다.
지난해 앙겔라 마르켈 전 독일 총리가 물러나기 전까지 두 나라 정상은 매일 문자를 주고 받는 등 개인적인 친분을 쌓으면서 유럽연합을 함께 이끌어 왔다. 하지만 숄츠 총리가 취임한 이후 두 나라 정상의 개인적 친분은 과거보다 못한 데다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하면서 정책에서도 견해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최근 가장 큰 갈등을 빚고 있는 사안은 가스 가격 폭등을 막기 위한 가격 상한제 도입이다. 프랑스는 14개 유럽연합 회원국들과 함께 가스 도매 가격 전반에 상한제를 도입해 가격 상승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독일은 상한제를 도입하면 가스 확보에 어려움이 크다고 반대해왔다. 독일이 지난달 29일 2천억유로(약 28조7천억원)에 달하는 가스 관련 보조금을 자국 기업과 가계에 지원하기로 한 것도 또 다른 갈등 요인이다. 재정 여력이 부족한 작은 나라들은 물론 프랑스와 이탈리아도 이런 독일의 독자적인 대응은 유럽 단일 시장의 공정 경쟁을 해칠 수 있다며 불편해하고 있다.
독일이 국방비 지출을 확대하면서 유럽산 전투기 대신 미국산 F-35 전투기를 구입하기로 하는 등 국방에 있어서 유럽연합보다 미국쪽으로 기우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프랑스와의 갈등을 키웠다. 독일이 영국 등 14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과 함께 추진하기로 한 방공체계 공동 조달 계획에 프랑스가 참여하지 않은 것도 이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독일 내에서도 독일 정부의 독자 움직임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야당인 기민련의 프리드리히 메르츠 대표는 “연방정부가 최근 몇달 동안 독일-프랑스 관계에 부담을 가중시켰다”며 숄츠 총리가 유럽연합에서 독일을 고립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전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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