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원주민들이 2009년 1월6일 대만 행정원 밖에서 토지에 대한 권리와 관련해 시위를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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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초,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하자 중국의 친강 주미대사는 <워싱턴 포스트>에 “대만은 1800년 동안 분리할 수 없는 중국 영토였다”는 칼럼을 기고했다.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다. 푸젠성에 살던 어민이나 해적들이 대만섬에 터를 잡기 시작한 건 고작해야 17세기였다. 당시 한족 이민자들은 섬 전체를 장악하지 못했고, 국가적 임무를 갖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대만섬에는 수천년 넘게 살아온 원주민들이 있었다. 최근 대만해협에 감도는 전쟁 위기는 중국 통일과 대만 독립이라는 오랜 쟁점을 기원으로 한다. 그러나 대만 원주민들로서는 모두 수긍하기 어렵다.
대만 원주민 기원에는 다양한 학설이 있다. 어떤 고고학자들은 2만~3만년 전 지금의 중국 광둥성 일대에서 왔을 것이라 보고, 혹자는 5천년 전쯤 푸젠성 쪽에서 건너왔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남태평양 군도에서 온 말레이 계통이라거나 오키나와 쪽에서 왔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공통된 견해는 과거 대만섬엔 ‘다두왕국’이라는 부족연맹 국가가 9세기 또는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존속했다는 사실이다. 한편 중국 대륙에서 대만 원주민을 본격적으로 기록한 것은 명나라 이후부터다. 명조는 대만 원주민을 번(番)이라 불렀고, 청조는 토번(土番), 번이(番夷)라 불렀다.
1624년 서구제국주의 세력이 대만섬에 깃발을 꽂으면서 원주민들의 고난은 시작됐다. 처음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남서부 해안지대를 장악했고, 1661년 이후로는 반청복명 운동을 이끌던 정성공이 장악했다. 1683년 청나라군은 정씨 왕국을 평정하고, 50년쯤 뒤에는 다두왕국을 멸망시킨다. 이렇게 해서 원주민-네덜란드-정성공 세력-청나라로 이어지는 권력 이동의 혼돈이 정리된다.
1732년 전후 객가인(이주민)들의 대만섬 이주로 한족 집단 이주가 본격화됐다. 이에 따라 200여년간 원주민의 한족화가 이루어졌고, 평지에 살던 많은 원주민이 한족 사회에 동화됐다. 한족 통치자들은 평지에 살던 원주민을 ‘평포번’, 한족화되지 않은 고산지역 원주민을 ‘고산번’이라 구별했다. 중요한 것은 대만 원주민 종족들을 구별짓는 기준이 정복자들의 편의에 따라 제각각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현재 대만 정부는 16개 민족을 공식 인정(지방정부 인정 3개, 미인정 23개)하는데, 카발란(갈마란)족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산지(山地) 원주민이다. 산지 원주민은 2022년 기준 대만 인구의 2.47%(58만3천명)를 차지하며, 아미족 21만7천명, 카나카나푸족 387명 등 규모는 천차만별이다.
지난 30여년 대만 사회의 변화만큼이나 원주민 공동체도 많은 변화를 겪었다. 1984년 대만원주민권리촉진회가 설립되면서 ‘정명운동’과 ‘토지반환운동’이 전개됐다. 원주민 역사에 대한 기억과 전통문화를 지키는 게 주된 목적이다. 1997년 이래 대만 정부는 과거 ‘산지동포’(山地同胞)나 ‘고사족’(高砂族)으로 통칭하던 것을 ‘원주민족’으로 바꿔 불렀다. 2001년부터는 ‘원주민신분법’을 제정해 기존 9개에서 카발란족 등 4개 원주민족을 추가 인정했다.
최근 정명운동의 주된 이슈는 △신분증의 성명 표기 △성씨 규정 △원주민 등록 기한 등 크게 세가지다. 2001년 성명법 개정 이후 원주민들은 신분증에 로마자를 병기할 수 있었는데, 한자로 된 중국어식 성명도 반드시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원주민 공동체는 신분증에 로마자로 표기된 이름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해왔다. 원주민청년전선 산하의 여러 소수민족 활동가들은 여러 차례 정부 앞 집회와 기자회견을 통해 현행법이 원주민 언어를 공식 언어로 다루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름에는 뜻이 있기 마련이지만 한자로 이름을 쓰면 이름이 담은 원래 뜻을 알 수가 없다는 것, 그리고 헌법상의 인격권과 이름에 대한 권리를 부정한다는 게 이유로 지목됐다. 원주민 중 열에 아홉은 이미 자기 성씨를 표기하기 위한 한자를 선정하고 이름도 한자로 병기하고 있었지만, 그만큼 불만도 컸던 것이다.
혼혈 자녀에 대한 규정도 논란이다. 원주민신분법 4조 2항에 따르면, 원주민과 비원주민 부모의 자녀는 둘 중 한 성을 택해야 하는데, 한족 성씨를 따를 경우 원주민의 법적 지위는 물려받을 수 없다. 한데 올해 4월, 대만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을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아버지 성을 따르는) 부계 성본주의 전통의 소산인 이 조항이 “원주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인종 간 평등을 보장하는 헌법의 의도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위헌 판결 이후 원주민 공동체 사이에는 뜨거운 논쟁이 불붙었다. 판결을 환영하는 목소리도 컸지만, 적지 않은 원주민 인사들이 판결을 비판하고 기존 법대로 따라야 한다고 여기고 있다. 현행법이 오히려 새로운 한족 성씨 숫자와 한자 성을 쓰는 인구의 증가를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낫다는 것이다. 반면 이런 견해가 부성주의에 대한 환상에 기반할 뿐이라는 견해도 제기된다.
전통 행사를 하고 있는 대만 란위섬 원주민들의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10월28일, 헌법재판소는 또 하나의 중요한 판결을 내렸다. 원주민위원회가 평지 원주민 등록 기한을 1956년, 1957년, 1959년, 1963년으로 국한시킨 것은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결한 것이다. 이로 인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시라야족은 법정 원주민으로 인정받게 됐다. 대만 언론들은 이 판결로 새로 원주민 자격을 얻을 수 있게 된 주민이 25만명에서 98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한편 일부 기존 원주민 리더들은 오랫동안 전통문화 수호를 위해 노력해온 자신들과 달리 도시에 살아온 평지 원주민들을 포함하면, 원주민 정책에 혼란이 생기고 예산의 제약 때문에 기존 원주민 권리가 침해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원주민 공동체를 양분하는 논쟁 속에서 니칼, 사붕가즈 등 원주민 청년 활동가들은 혼혈원주민청년포럼을 결성했다. 9~10월 5개 지역에서 열띤 토론회를 연 이들은 11월19~20일 이틀간 대토론회를 열 예정이다. 이 자리에서 원주민 청년들이 겪어온 차별과 고민, 법 개정에 대한 의견을 밝히고 캠페인을 이어간다고 한다. 이들은 한족 사회에 가려진 평지 원주민 역시 식민주의 역사에서 이름을 빼앗긴 피해자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작은 차이, ‘누가 더 피해자인가’를 두고 ‘을’들 간의 갈등이 점증하는 한국 사회에서 경청할 만한 이야기란 생각이 든다.
동아시아 연구활동가. 플랫폼C 활동가. 동아시아 이야기를 씁니다. 각 사회의 차이를 이해하고, 같은 꿈을 지향하자(異牀同夢)는 의미로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상을 품은 동아시아의 꿈(理想東夢)이라는 뜻도 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