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4일 이란 북동쪽에 위치한 쿰에 있는 핵시설을 촬영한 위성 사진. 막사르 테크놀로지사 제공. AFP 연합뉴스
이란이 자국 내 미신고 핵물질 조사를 요구하는 세계원자력기구(IAEA)의 결의에 반발해 2015년 핵 협정인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 때 금지한 첨단 원심분리기를 사용한 농도 60%의 고농축우라늄(HEU) 생산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22일 이란 반관영 <파르스> 통신 등에 따르면, 이란 원자력청(AEOI)은 이날 포르도 지하 핵시설에서 개량형 원심분리기인 ‘IR-6’를 이용해 농도 60%의 고농축우라늄 생산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또, 세계원자력기구에 서한을 보내 이 조처는 “결의안 채택에 대한 단호한 대처”라고 밝혔다. 세계원자력기구는 앞선 17일 이사회를 열어 이란 내 미신고 시설 3곳에 대한 핵물질 조사를 하는데 협조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올해 두번째로 통과시켰다.
이란의 입장 발표가 이뤄진 뒤 세계원자력기구도 성명을 내어 “이란이 포르도 핵시설에서 ‘IR-6’ 원심분리기 2개를 사용해 최대 60% 농축된 고농도 육불화우라늄(UF6)를 생산하기 시작했다”며 이 사실을 확인했다.
이번 농축에 사용된 ‘IR-6’는 지난 2015년 7월 합의된 이란 핵협정인 포괄적 공동행동계획에서 금지한 첨단 원심분리기다. 협정에서 허용한 원심분리기 ‘IR-1’보다 농축 속도가 약 10배 빠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축 순도 60%는 핵무기 개발에 이르는 순도 90%에 비하면 낮지만, 2015년 정한 농축 상한선 3.67%이나 합의 전 이란이 생산했던 20%에 견주면 훨씬 높은 것이다. 이란 원자력청은 기술적으로 이 수치를 90%까지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2015년 핵협정 때는 이란이 1세대 원심분리기 ‘IR-1’만 사용하도록 허용했지만,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2018년 5월 핵협정에서 탈퇴한 후 이란은 ‘IR-2m’, ‘IR-4’, ‘IR-6’ 등 보다 효율적인 첨단 원심분리기를 설치했다고 전했다.
이란의 이번 작업은 산 아래에 위치해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는 포르도 지하 핵시설에서 이뤄진 것이라 도발의 강도가 더욱 높은 것으로 해석된다. 이란은 이미 다른 지역에서 순도 60%까지 우라늄을 농축하고 있지만, 포르도 핵시설에서도 이런 농축 작업을 벌이는 것은 서방 국가들에겐 높은 도발로 여겨진다고 <로이터>는 설명했다.
2015년 핵협정 참여했던 영국·프랑스·독일 3개국은 세계원자력기구의 공식 확인 후 공동성명을 내어 “특히 우려되는 것은 이란이 포르도 지하시설에서 고농축우라늄 생산량을 늘리기로 한 결정이다. 이는 세계적 핵 비확산 체제에 대한 도전이며, 핵 확산 위험을 수반하는 정당성 없는 조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서구 국가들과 이란은 지난해 1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취임한 뒤 핵협정을 되살리기 위해 활발한 교섭을 이어왔지만, 지난 9월 이후 교착상태에 빠진 상태다. 게다가 마하사 아미니의 의문사 이후 이란이 반정부 시위에 대한 격한 탄압을 이어가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란산 드론이 쓰인 것이 확인되면서 미국 등 서방국가들과 이란 사이의 거리는 더욱 멀어진 상황이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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