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에서 한 여성이 걸어가고 있다. 뒤편에는 전광판에 군인의 사진이 내걸리고 “러시아의 영웅”이라 쓰여있다. AP 연합뉴스
전쟁에 지친 러시아인들이 원정출산을 고려하는 국가로 아르헨티나가 떠오르고 있다.
3일 영국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주아르헨티나 러시아 대사관의 영사국장 조지 폴린은 지난해 러시아인 2000∼2500명이 아르헨티나에 입국했는데 상당수가 출산을 계획하는 여성들이라고 말했다. 폴린 국장은 “입국자 수가 올해 1만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원정출산 중개업체를 운영하는 에바 페쿠로바는 신문에 “오는 5월까지 예약이 꽉 차있고 매일 12명 이상의 러시아 임신부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한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에서 출산을 원하는 러시아 임신부를 위한 교통, 서류, 숙박, 병원 체류를 알선하는 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러시아인들은 전쟁 전에도 미국 플로리다 등으로 원정 출산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전쟁 이후 미국 비자 발급이 어려워지면서 미국에서 멀지 않는 남미 국가 중 아르헨티나가 무비자로 각광받게 됐다고 전했다. 아르헨티나 국적이 있으면 유럽연합(EU), 영국 등 171개국을 무비자로 갈 수 있고 미국 장기 비자 받기도 수월한 편이라고 그는 말했다. 또한, 아르헨티나는 비교적 민간과 공공 의료 서비스의 질이 높아 선호된다고 전했다.
페쿠로바와 같은 중개인들은 한때 러시아인들의 원정출산 대표지였던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로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만나며 서비스 모델을 바꿨다. 페쿠로바는 “모든 사람이 러시아의 현재 상황에 대해 대안을 찾고 있다. 아이에게 아르헨티나 여권을 줌으로써 자유를 주길 원한다”고 말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자녀를 출산해 자녀가 시민권을 얻으면, 부모 또한 국적 신청이 수월하다.
러시아 국적의 여성 체레포비츠카야는 이달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병원에서 출산했다. 지난해에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출산하러 온 수백명의 러시아 여성 중 한 명인 그는 “병원에 줄을 서 있는데 내 앞에 러시아 여성이 최소 8명은 서 있었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지난해 징집을 확대하면서 원정출산 후 자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아르헨티나에 남은 부모들이 늘고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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